▲ 꿈에 그리던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에 수시로 최종 합격한 정환(가명)군이 아빠 김우성(53·가명)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순석기자

정환이(19·가명)는 어릴 적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미술영재'였다. 틈만 나면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다. 정환이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들의 재능을 살려주지 못했다.

IMF 당시 사업을 하다 큰 빚을 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 그 흔한 미술학원조차 보내주지 못했다. 그래도 정환이는 방황하지 않았다. 독학으로 꿈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인천예술고에 당당히 수석으로 입학했고, 3년 내내 전교 1등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재수 끝에 이번 대입시험에서 꿈에 그리던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에 수시로 최종 합격했다.

독학으로 홍익대학교 입학
60만원 지원금 생활도 빠듯
"성공해 재능기부 꼭 할것"


지난 27일 오전 10시께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에 있는 정환이집을 찾아가봤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주효영 사회복지사가 취재에 동행했다. 정환이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수시 합격 축하 인사를 건네자, 얼굴이 벌개지며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환이 아빠 김우성(53·가명)씨는 홍익대 건축학과 출신이다. 아들과 대학 동문 선·후배가 된 것이다. 김씨는 한때 잘나가는 건축설계업체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건설업에 손을 대면서 수억원의 빚을 진 채로 부도가 났다. 정환이가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한 뒤 김씨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더니 언제부턴가 지팡이 없이는 걷기조차 힘들어졌다. 희귀질환인 척수소뇌변성증. 김씨는 지난 2003년 뇌병변장애 2급 진단을 받았다. 여기에 엄마 박영희(49·가명)씨도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가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업실패와 장애로 인한 생활고를 겪으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제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김씨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했다. 현재 정환이네 가족은 매달 정부 지원금으로 나오는 약 6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환이는 얼마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과 교재비 등을 벌기 위해서다. 다행히 어린이재단은 정환이의 학비로 230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정환이가 대학에 내야 할 등록금만 해도 5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도 하기 어려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환이 여동생도 지금 인천예술고에 재학 중이다. 서양화가 전공이어서 이래저래 들어갈 돈이 많다고 한다. 정환이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정환이는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필립 스탁은 2천억달러의 요트도 디자인하지만, 2달러짜리 우유병도 디자인했어요. 진정한 디자인은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의 명언을 잊지 않을 거예요." 정환이는 꼭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공해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후원 문의: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천본부(032-875-7010), 홈페이지(www.childfund-incheon.or.kr)

경인일보·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동캠페인

/임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