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9월 11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하늘은 푸르고 태양은 따스하게 대지에 내리 쬐고 있었다. 그런데 국영 라디오 방송에선 밑도 끝도 없이 "오늘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라는 비 예보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시민들은 의아했지만 그것이 군부가 보낸 쿠데타 신호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이날 문민정치를 표방하던 아옌데의 신사회주의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장군에 의해 무너진다. 대통령궁으로 밀려드는 군인들. 그들과 맞서 싸우는 아옌데 지지자. 그들 앞에서 '우리 승리 하리라(Venceremos)'를 민중들과 함께 부르는 이. 그리고 그는 체포됐다.

5일 후인 9월16일. 가혹한 고문으로 양 손목이 완전히 부러지고, 몸에 40발의 총알을 맞고 죽은 참혹한 시신 하나가 공동묘지 인근 철로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 누가 봐도 고문에 의한 죽음이었다. 빅토르 하라.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노래를 통한 사회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운동의 기수. 아르헨티나에 메르세데스 소사가 있다면 칠레는 빅토르 하라가 국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피노체트 정권에게 그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의 나이 불과 41세였다.

그가 죽은 후 피노체트는 그의 음반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하라의 죽음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졌는지는 오랜기간 밝혀지지 않았다.

하라 피살사건과 관련된 군 장교 출신 용의자 4명이 마침내 지난 2일 구속됐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 중인 1명에 대해서는 인도요청서가 발부됐다. 그가 죽은 지 40년만이다. 이제 그에 대한 죽음의 실체가 밝혀질 것이다. 피노체트 독재기간 동안 최소 3천명이 납치 피살돼 사망했고 3만여명이 고문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2006년 사망했다. 헬비오 소토감독은 1975년 다큐멘터리적 구성을 차용해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만들고,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칠레전투'는 제3영화의 모범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영화로 남아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