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 태어난 딸아이에게 젖 대신 멀건 '물죽'을 먹여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남편의 술주정과 거듭된 폭력에서 지켜낸 아이. '하늘도 무심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엄마는 아이에게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워야만 했다. 2.2㎏ 저체중으로 태어나 더 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매정한 남편은 가족을 돌볼 생각조차 안 했다. 그저 술로 허송세월만 보냈다. 분유값이라도 벌어올테니 아이를 봐달라 애원하고 또 애원해도 남편은 냉정하게 뿌리칠 뿐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눈물을 삼키며 아이에게 밥알을 으깬 물죽을 끓여 먹일 수밖에 없었다.
가정폭력 지쳐 2년 만에 이혼
식당차렸지만 보증금만 날려
차가운 방바닥 집에선 입김
큰아이 "사는게 힘들어요…"
"살기가 너무 막막했어요. 아이 분유값도 없는데, 느닷없이 치킨을 시키라는 거예요. 맥주를 마시겠다고. 그런 사람이었어요…." 두 딸아이의 엄마 이정미(30·인천시 중구·가명)씨는 긴 한숨부터 내뱉었다.
이씨는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다. 하지만 둘째 딸을 임신한 뒤에도 남편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거듭된 폭력으로 둘째를 유산할 뻔 했다. 이씨는 결국 남편을 피해 별거를 시작했고, 결혼 2년 만에 이혼했다.
지난 3일 오전 10시께 판잣집 같이 생긴 허름한 곳에서 두 딸과 지내고 있는 이씨를 만났다. 올 겨울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허연 입김이 나올 만큼 집안은 온통 냉골이었다. 그나마 오갈데 없는 처지에 있을 때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한 집이다. 이씨는 인터뷰 도중 지금 사는 곳이 노출되지 않게 해 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다. 전 남편 때문이었다. 예전 살던 집에도 술이 취한 채 찾아와 행패를 부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첫째 지민(6·가명)이와 둘째 정민(4·가명)이를 근처 친척 집에 잠시 맡겨두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중구청과 주민센터 직원들이 이씨 집을 찾아와 생계 조사를 하고 간 적이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전 남편의 폭력과 이혼 사실 등을 얘기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이씨는 "지민이가 한동안 우울해 했다"며 "(인터뷰 때문에) 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정부 지원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이혼을 했어도 양육 책임이 있는 전 남편에게 수입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에 편지까지 써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한부모가정으로 아이당 5만원의 양육수당을 받는 것이 전부다. 그야말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 애들 아빠는 아주 이따금씩 통장에 돈을 보내올 때가 있다. 하지만 이씨는 그 돈이 반갑지 않다. 고작 3만~5만원의 푼돈을 보내놓고는 애들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생떼를 쓴다고 한다.
이씨의 부모도 도움을 줄 형편이 못된다. 남편과 이혼한 뒤 이씨는 빚을 얻어 친정 엄마와 함께 작은 백반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건물 주인이 바로 옆에 큰 식당을 차리는 바람에 보증금만 날리고 말았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없는 살림에 친정 아버지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데 이어 엄마까지 허리에 이상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았다. 치과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부모를 부양하던 애들 이모도 퇴행성 허리디스크로 직장을 그만둔 상태다.
이씨는 자활을 조건으로 하는 일종의 조건부 생활수급을 신청했다. 그래서 지난해 8월부터 직업훈련학교를 다니며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이씨는 차비와 식대 등으로 나오는 31만6천800원을 생활비로 쓰며 근근이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쌓이고 쌓인 카드 연체금이 180만원이고, 여기에 두 딸의 유치원비도 200만원이 넘게 밀려 있다.
저체중으로 태어난 지민이는 영양 부족이 심해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다. 축농증과 천식을 앓고 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우울해 할 때가 많아요. 유치원에서 그러는데 지민이가 '선생님, 사는 게 힘들어요'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 어린 것이…. " 이씨는 잠시 울먹였다. 둘째 정민이 역시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영양실조로 빈혈이 심해 자주 쓰러진다. 신장도 좋지 않아 갑작스런 고열에 시달린다.
이씨는 왼쪽 얼굴에 마비가 왔다. 올 겨울 초 난방이 전혀 안 되는 곳에서 잠시 지냈을 때 생긴 병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엄마와 두 아이의 치료 문제, 이 가족이 올 겨울을 이겨낼 새 보금자리, 그리고 계속 쌓여만 가는 빚…. 무엇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돌아서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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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