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트라몬타니즘(ultramontanism)'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도 감히 높이를 같이 할 수 없다는 교황지상권론(敎皇至上權論)이다. '종교의 황제'가 교황이다. 법왕, 교왕, 교종(敎宗)이라고도 부르고 일본서는 법황(法皇)으로도 호칭하는 분이 '교황'이라면 신도(信徒)는 '신도(臣徒)'이기도 하다. 그만큼 교황의 권위는 대단하다.
중세 영국엔 교황이 국왕보다 높다고 믿는 죄, 즉 '교황 존신죄(尊信罪)'라는 게 있어 처벌을 받기도 했고 '아비뇽의 유수(幽囚)'라는 게 증명하듯 교황청이 프랑스 왕권에 굴복한 오랜 기간이 있긴 했어도 반대로 왕권이 교황권에 굴복한 사건도 있었다.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무릎을 꿇은 이른바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것이다.
13세기 로마의 테베레 강안(江岸), 베드로가 순교한 그 곳에 건설된 바티칸은 가톨릭 총본산인 교황국이고 교황은 그 나라 국왕이자 교황이다. 하지만 흔히 '교황'만으로 불리고 따라서 전하, 폐하가 아닌 '성하(聖下)'라는 존칭이 붙는다. 베드로→리누스→아나클레투스로 이어진 2천여 년 그리 불렀고 264대 요한 바오로 2세, 265대 베네딕토 16세도 신에 가장 가까운 분, '성하'로 신도들은 우러렀다.
하지만 근년 들어 교황 성하의 권위엔 잦은 얼룩이 져버렸다. 2011년 8월 19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가톨릭 제전인 '세계 청년의 날' 행사의 교황 참례를 반대하는 시위였다. 실업률이 20%인 지경에 6천만유로(약 900억원)나 들이는 거창한 행사란 가당치도 않다는 항의였다.
성직자 성추문과 권력 다툼 추문 또한 끊이지 않았고 2010년 9월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교황청의 재산을 관리하는 종교사업협회('신의 은행'으로 불리는 바티칸은행)가 자금 세탁을 한 혐의로 고티테디스키 총재를 수사, 작년 6월 해임됐고 교황의 집사(執事) 가브리엘레는 교황의 사신(私信)과 기밀문서를 자택에 은닉한 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86세 고령이라는 건강 문제보다는 자신에 대한 '성하' 경칭이 더 이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괴감(自愧感), 그런 정신적인 고통이 더 무거운지도 모른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