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로 헌액한 유명우 YMW버팔로프로모션 대표가 수원시아마추어복싱연맹 체육관에서 가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세계 챔피언에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헌액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

처음엔 거짓말처럼 들려 무척 당황
믿기 힘들정도의 주민 환대에 감동
존경하는 장정구 선배 뒤이어 영광

■한국 복싱계의 현실 암담하다는데…

80년대 황금시대 때 복싱인들 자만
투자·지원있어야 세계 챔피언 배출
집행부와 머리맞대고 연구 시작해야

■사업 순항 중 프로모션 차린 이유는

내가 가진 장점들 국가에 환원 결심
후배들 더 큰 꿈 품을수 있게 도울것
국민들도 한국 복싱 관심 가졌으면


"국민에게 사랑받는 복싱선수로 이제는 후배 양성을 위해 온 힘을 쏟겠습니다."

'한국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유명우(49) YMW버팔로프로모션 대표가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주 캐너스토타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HOF) 박물관에서 헌액식을 가졌다.

'작은 들소'로 불리며 1980년대 한국 프로복싱 전성기를 이끈 전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유 대표가 마침내 세계 복싱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는 초대 헌액자인 무하마드 알리(미국)를 비롯해 슈거 레이 레너드, 마이크 타이슨, 로베르토 두란 등 기라성 같은 복싱 챔피언은 물론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탤론,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 등 세계 복싱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만이 입성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에선 일본의 초대 세계챔피언인 하라다 마사히코와 태국의 전설 카오사이 갤럭시, 그리고 2009년 한국의 장정구가 등극했다.

이어 유 대표가 반열에 오르며 아시아 출신 4명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2명을 헌액하게 됐다. 미국 뉴욕에서 헌액식을 마치고 돌아온 유 대표를 수원시아마추어복싱연맹 체육관에서 만났다.

어릴적 그를 본 국민들 대부분은 키가 작고 다부진 유명우를 기억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나오는 그의 속사포 펀치는 그 시절 어렵게 지냈던 국민들의 마음에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준 또하나의 빛줄기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의 유명우는 그저 시골 아저씨다. 훈훈한 인상에 장난기 섞인 눈매는 그가 복싱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체육관에서 반갑게 맞아준 유 대표에게 헌액식 참석에 대해 먼저 물어봤다. 유 대표는 "은퇴 후 처음 맛보는 감격이었다"며 운을 뗀 뒤 "과거에 선수생활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자부심도 느꼈고 보람과 영광, 모든 것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헌액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믿기 힘들 정도로 주민들의 환대에 감격했고 복싱의 위상을 체감하며 명예와 사명감도 느꼈다"고 전했다.

사실 이번 헌액 행사에 유 대표는 감격스런 일을 많이 경험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마다 복싱팬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호텔로 찾아왔고, 일부 팬은 1980년대에 등장한 유 대표의 브로마이드를 들고 환호했다.

게다가 유 대표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차에 올라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연도에 모인 1만여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를 하며 그를 축하했다.

'헌액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에 유 대표는 "처음에는 거짓말처럼 들렸다.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봤을 정도였다. 무척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랐다"며 "존경하는 장정구 선배에 이어 두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명우'하면 1980년 한국 복싱계의 아이콘이었다. 1982년 프로에 데뷔한 유 대표는 1985년 12월 조이 올리버(미국)를 꺾고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는 이 체급 최다인 17차례 방어에 성공했고 1991년 이오카 히로키(일본)에 유일한 1패인 판정패를 당하며 잠시 타이틀을 내줬지만, 이듬해 11월18일 적지에서 이오카에 설욕하며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프로통산 전적은 39전38승(14KO) 1패다.

이후 그는 1차 방어에 성공한 후 챔피언 벨트를 자진 반납했다. 현역시절 강철 같은 체력과 속사포 펀치가 트레이드 마크로 자기관리의 표본으로 불릴 만큼 성실했다.

선수시절에 대해 유 대표는 "챔피언 벨트를 처음으로 따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지만 챔피언 벨트를 일본 선수에게 내줬을때도 생각난다"면서 "하지만 챔피언을 뺏기기 싫었다. 챔피언 자리를 되찾은 뒤 스스로 물러나는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 대표는 선수 시절인 1988년 3억8천만원의 대전료를 받아 최고의 기록을 낳기도 했다. 그는 "당시 대전료 사상 억단위가 넘어간 전례는 없었다. 그때는 복싱이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 복싱 붐이 일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 대표는 "당시에는 프로스포츠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 시절이라 방송사들이 앞다퉈 복싱 경기를 생중계로 방송했다"며 "그로인해 대전료가 껑충 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와 자연스럽게 최근 복싱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현재 한국 복싱계의 현실은 암담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세계 챔피언이 탄생하겠는가"라면서 "1980년대 황금시대 때 복싱인들이 너무 자만했다. 미래에 대한 복싱계를 생각하지 못한 복싱인들이 지금의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 전 WBA(세계복싱협회) 챔피언 유명우 대표가 뉴욕주 캐너스토타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HOF) 박물관에서 링 아나운서 지미 레논 주니어, 복싱 저널리스트 콜린 하트로부터 헌액 축하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어 유 대표는 "한국 복싱이 다시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집행부와 복싱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한다"며 "세계 챔피언을 만들기 위해선 수년간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은퇴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3년 은퇴 후 예식업을 시작으로 설렁탕집에 이어 현재는 수원에서 오리고기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친척이 예식장을 운영해 은퇴 후 잠시 예식장에서 일을 해봤다. 이후 자신감이 생겨 음식점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경영까지 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업과 복싱 중 어느것이 쉽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복싱이 쉽다. 복싱은 나 혼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면 되지만, 외식사업은 친절이 먼저다.

즉 손님이 원하는 만큼 나의 자존심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챔피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해 손님들과 말싸움도 하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챔피언이 아닌 서비스 사업자로 나 자신을 과감히 버렸더니 자연스럽게 손님이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그럼 사업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던 유 대표가 갑자기 프로모션은 왜 차렸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받아온 사랑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국내 남자 프로복싱계에 세계 챔피언이 없다는 슬픈 현실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어 직접 나섰다는게 그의 답이다.

그는 "후배들을 위해 복싱의 활로를 열어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장점을 이제는 국가에 환원하고 나아가 한국 복싱을 다시 전성기로 만들고 싶어 프로모션을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80~90년대 격투기는 복싱이 주류를 이뤘지만 2000년대부터 종합격투기인 UFC와 K1에 밀려 복싱 인구도 많이 줄었다. 이에 대해 그는 "홍보와 물량공세를 퍼부은 K1은 이미 거품이 빠졌다.


이제 국민들은 복싱에 다시 열광할 것"이라며 "조만간 한국 선수들이 세계 챔피언에 오르고 탄력을 받게 된다면 잊혀졌던 국민들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 대표는 배우 이시영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시영씨는 복싱을 대중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만약 연예인들이 복싱을 배운다면 적극 추천하고 직접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 방배동에 YMW버팔로 프로모션을 차린 유 대표는 조만간 서울에 체육관을 준비중이다. 또 경기도에는 김기택 수원시아마추어복싱연맹 전무이사와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유 대표는 "현재 프로모션에는 프로복싱계에 유일한 동양챔피언 김민욱을 비롯해 10여명의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김민욱은 최근 3차 방어에 성공했다"며 "이들은 앞으로 필리핀, 미국, 일본과 교류를 통해 기술을 연마하고 세계 챔피언의 꿈을 펼쳐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민욱은 유 대표의 지도아래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라이트급(63.503kg) 챔피언에 등극, 조만간 세계 타이틀매치에도 도전한다.

유 대표는 복싱 꿈나무들과 국민들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꿈나무들이 어려움이 있더라고 좌절하지 말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며 "유망주들이 더 큰 뜻을 품고 한국 복싱을 다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유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서도 한국 복싱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언론에서도 복싱에 대한 보도를 많이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신창윤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