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2년 4월 12일 임진왜란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승승장구하며 20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였다. 조선의 국왕 선조는 임진왜란을 너무도 늦게 예상하였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조정의 관료들은 일본의 성장으로 인한 침략을 우려하였지만 미개하고 수준 낮은 일본인들이 차마 문화의 국가 조선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선 관료들의 오만이 온 산하를 백성의 피로 물들인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후인 1593년 4월 13일 한양을 차지하고 있던 일본군은 남쪽으로 후퇴를 하면서 차마 말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이 바로 한양 인근 양주 땅에 있는 성종의 선릉(宣陵)과 중종의 정릉(靖陵)을 도굴하여 파괴한 것이다. 이미 5개월 전에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의 태릉(泰陵)과 명종의 강릉(康陵)을 파헤친 그들이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군은 조선 왕릉안에 엄청난 보물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능을 파헤쳤다. 그리고 그 안의 시신을 드러내었다. 관안에 모셔져 있던 성종과 중종의 유골은 불태워졌고, 일본군은 한강변에 갖다 버렸다. 차마 있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국가 그 자체였다. 비록 조선이 관료들에 의해 움직이는 관료국가였지만 국왕의 존재는 신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 그 어디에도 조선 국왕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내용이 없다. 지위와 권한을 규정할 이유가 없는 초월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국왕의 장례 후 능역은 철저히 보호되었다. 그러니 조선 왕릉이 파헤쳐진다는 것은 조선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근대 봉건사회에서도 전쟁시 지키는 암묵적 규약이 있었다. 이는 상대국가 국왕의 무덤을 파헤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러한 규약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패악(悖惡)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러한 무례와 패악이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은 군국주의(軍國主義)를 부활하려고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의 손자가 다시 일본의 총리가 되었으니 그럴만 하기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일본은 100여년전의 제국주의 국가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한 원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기억하고 이를 반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을 양성하지 않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든 평화헌법을 외면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아베 총리 이하 대다수의 관료들과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인 위안부로 희생된 수많은 조선 여인들의 한맺힘을 외면하고 그녀들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우겨대는 그들이 과연 오늘 우리들의 동반자인지 의심스럽다. 이제 일본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다면 진정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군국주의 부활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그것이 400여년전 조선 국왕의 왕릉을 파헤치고 조선의 여인들을 겁탈한 죄과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다. 이것이 상생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초이다.
/김준혁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