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은 오씨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어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 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지는 진실 오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아도 좋다. 해변가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서웁고나. 수퉁하고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라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오장환, (1918~1951)'성씨보(姓氏譜)'(1934) 전문
▲ 권성훈(문학평론가)
외적 억압을 자아는 위험한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시 화자는 자신의 성씨를 '부정'하는 바, 족보는 '조작된 관습'으로써 자신의 '성씨를 중국 청인(淸人)이 조상이지만 그것마저도 한낱 대국숭배(大國崇拜) 사상'으로 치부해 버린다. 족보는 1476년(조선 성종7년) 안동권씨 '성화보'가 최초 사적기록이지만 이후 가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고증도 없이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며 선대의 벼슬을 자의적으로 과장, 조작한 사실을, 화자는 비판하며 '할아버지는 오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고, 똑똑한 사람들은 족보를 창작하고 팔았다'. 즉 사대주의와 중화사상에 젖은 조상들은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시조라고 한 것을 정면으로 비난한다. 여기서 화자는 '족보'뿐 아니라, '역사를 믿지 않아도 좋다'라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역사는 '소라 껍질처럼 무거운 짐' 바로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부정의식'은 '식민지 현실'의 '모멸감'에서 출발하여 이 모든 상황을 조상 탓으로 '회피'하면서 끝내는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분열증'을 보이는데, 이는 '암흑의 시대'에 불안했던 지식인의 '방어적 신호'이면서 '소극적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