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간지로 임오년(壬午年), 말의 해다.
말은 12지중의 일곱번째 동물인 오(午).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1시, 방
위는 남쪽, 달로는 음력 5월이다.
정월 첫 오일(午日)은 '삼오일' '말의 날'이라고 해서 옛날에는 말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좋은 음식으로 대접했다. 또 10월의 오일에는 팥떡을 만
들어 마구간 앞에 차려놓고 말의 무병과 건강을 빌었다.
한국에 말이 들어온 것은 약 2천500여년전. 경기도 광주와 경북 문경지방
에서 석기시대의 말의 치아가 발견되긴 했으나 말이 가축으로 본격적으로
길러진 것은 청동시대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문헌에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다. 신
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 탄생설화를 보면 백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백마가 알을 품고 있다가 하늘로 올라갔고 바로 그 알에서 태어난 것이 박
혁거세다. 이밖에도 후백제의 견훤 탄생설화 등 신성한 탄생을 주제로 한
설화에는 말이 곧잘 등장한다.
이것으로 보아 말은 지상(地上)과 천상(天上)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영
물로 예부터 우리 조상들의 가슴속에 깊이 심어져 있었다.
말은 12지 동물가운데 조류인 닭, 상상의 동물인 용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성한 동물로 그려졌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신라 고분인 천마총
벽화다. 벽화의 주인공은 날개달린 천마로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소망을
담고 있다.
천마는 하늘의 옥황상제가 타고 다니는 것으로 지상의 말에 날개를 달아
천상을 날게 한 것은 우리 민족의 말에 대한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은 예부터 소나 돼지, 개고기는 먹으면서도 말고
기는 먹지 않았고 말이 죽으면 따로 무덤까지 만들어주는 정성을 쏟았다.
파주 윤관장군 묘역을 비롯해 전국 여러곳에 말 무덤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를 잘 뒷받침해준다.
말은 박력과 생동감을 대표하는 동물. 이런 특성으로 예부터 미술, 토
기, 토우, 벽화, 신화, 전설, 민담, 속담, 시가, 민속신앙, 민속놀이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3세기 후반 중국인 진수가 쓴 삼국지 동이전 부여전에는 '그 나라에는 좋
은 말이 난다'는 구절이 있다. 또 삼국지 고구려 및 예(濊)조에도 말에 대
한 언급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특이한 것은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에
대한 기록인 '삼국지' 한(韓)조. 이에 따르면 마한은 우마를 탈줄 모르는
반면 변·진한은 우마를 탄다고 기록했다.
또 고려 태조는 마신(馬神)을 수호하는 별을 제사하기 위해 도성 안에 마
조단(馬祖壇)을 설치했다. 조선조까지도 이 마조단은 동대문밖에 남아있었
지만 19세기말에 폐지됐다.
십이지 동물가운데 용호와 함께 튼튼한 육체와 활기 넘치는 정력의 화신
으로 일컬어지는 말은 희망과 밝은 미래를 약속해주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속담에 '말 가는데 소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우두머리, 지도자, 선
구자를 상징한다.
민속놀이인 윷놀이에서도 도는 돼지, 개는 개, 윷은 소를 상징하고 가장
점수가 많은 모는 말을 상징한다. 즉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라 힘과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자손들의 출세가도를 위해 백말
그림을 그려 놓기도 했다.
이밖에 꿈에 관한 해몽(解夢)을 보면 우리민족은 예부터 말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왔다.
말에 관한 꿈은 어떤 내용이든 '대길(大吉)'로 받아들여졌다. 꿈에 말을
타면 세력을 얻거나 기세를 떨치고 귀한 협조자를 얻는다는 해몽이다. 말
이 울면 말사람의 명성이 자자하고 말이 집가운데 있으면 아들 소식을 듣
게 되며, 말이 사람을 물면 벼슬길에 나가거나 이름을 얻는 길몽(吉夢)으
로 풀이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을 놓고 띠타령이 심해졌다.
'말띠 여자 팔자 세다'는 속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우리 문헌
에서 수집된 자료에는 이런 속담이 없다.
조선시대의 경우 말띠 왕비가 아주 많았다. 성종의 정현왕후 윤씨, 인조
의 인열왕후 한씨, 효종의 인선왕후 장씨, 현종의 명성왕후 김씨 등 조선조
에서만 말띠 왕비가 4명이나 배출됐다. 왕실에서 사주팔자를 따질 줄 몰라
유독 말띠를 왕비로 간택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말띠의 위상이 현재처럼 현격히 추락한 것은 일제 식민강점기였다. 일본
에서는 말띠 여자를 꺼리는 풍습이 있었고 이 고약한 풍습이 잘못 전해져
현재처럼 그릇된 말띠 기피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에 나타난 말은 한마디로 신성한 동물, 그 자체였다.
땅과 하늘 이어주는 영물
입력 2001-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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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3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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