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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가르쳤지.
산이 무엇을 말하고
산에 오르면
어떻게 사람도 크게 서는지를
이 산은 가르쳤지.

나는 어른이 된 뒤에야
어렸을 적 어머님 말씀,
그 큰 뜻을 알 수 있었지.
‘저 산은 하눌산이여.’
‘하눌님이 계시는 집이여.’ 이성부(1942~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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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말없이도 안다는 것은 깨달음의 언어에 가깝다. 깨달음의 언어는 언외언(言外言)에 속한 ‘침묵의 세계’이며 ‘내면의 울림’만이 전달되는 ‘시원의 소리’인 줄 모른다. 이른바 “산이 무엇을 말하고/산에 오르면/어떻게 사람도 크게 서는지를/이 산은 가르쳤지.” 그러나 산이라는 변하지 않는 원형성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변하고 있는 존재들이 처음부터 알 수 없다. “나는 어른이 된 뒤에야/어렸을 적 어머님 말씀,/그 큰 뜻을 알 수 있었지.” 당신이 가을산을 찾는 것 또한 푸름이 바래가는 ‘철지난 나이’에 이르러 “저 산은 하눌산이여.” “하눌님이 계시는 집이여.” 당신을 맞아들이는 산을 오르다 어느새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중얼거림처럼 어머니 말씀을 깨닫는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