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전후면 자주 등장하곤 하는 것이 살생부(殺生簿)이다. 천지가 산 것을 죽게도 하고 없던 것을 낳게도 하는 살생(殺生)은 자연한 도리이다. 천지가 지닌 위대한 德은 바로 낳는 것이라고 '生'의 미덕을 찬탄했지만 하나가 살아나오는 과정은 하나가 죽어가는 과정인 것을 생각해보면 殺生은 동전의 앞뒤 관계와 같다. 살기만 하고 죽지 않는 법은 없으니 중요한 것은 살리고 죽이는 기준이다.
화랑(花郞)의 세속오계(世俗五戒)중 하나인 살생유택(殺生有擇)은 살생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계율이다. 그렇지만 가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측면에서 보면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경계이다. 죽이기는 하되 합당한 명분과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법칙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흐름을 따른다 해도 어떤 생명이든 생의(生意)을 꺾으려 한다면 사력을 다해 저항하게 되어있는데 정치적 살생은 말할 것이 없다.
이른바 '정치적 살생부'가 있다면 그 기준은 국민과 시민과 지역민의 의사인 민의(民意)가 되어야 한다. 민의를 따라 행하면 명분이 있고 또 큰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민의가 아니라 칼을 쥐고 있다고 자부하는 측의 사사로운 욕망을 기준으로 행한다면 이는 정글의 먹이사슬보다 나은 것이 없다. 정글에서는 최소한 자기의 배고픔 그 이상으로 헛되이 죽이는 일은 없다. 훌륭한 적을 살려둘 줄 아는 이가 큰 사람이다. 살생에 가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