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상대를 업신여기고 불량하고 악독하면서도 육신이 멀쩡하게 지내고, 누구는 온순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착하면서도 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가. 때문에 형벌로 징계하고 상으로 권장하여 죄와 공을 가리는 것으로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또한 정(政)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멍청하면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악(惡)을 전파하고 있고, 누구는 어질면서도 아랫자리에 눌려 있어 그 덕(德)이 빛을 못 보게 할 것인가. 때문에 붕당(朋黨)을 없애고 공도(公道)를 넓혀 어진이를 기용하고 불초한 자를 몰아내는 것으로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다.
밭도랑을 준설하고 수리(水利) 시설을 함으로써 장마와 가뭄에 대비하고, 소나무·잣나무·밤나무 등속을 심어서 궁실(宮室)도 짓고, 관곽(棺槨)도 만들고, 또 곡식 대신 먹기도 하고, 소·염소·당나귀·말·닭·돼지·개 등을 길러 군대와 농민을 먹이기도 하고, 노인들 봉양도 한다. 산림과 하천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시기를 가려 산림(山林)에 들어가서 짐승과 새들을 사냥함으로써 해독을 멀리하기도 하고, 또 고기와 가죽을 제공하기도 하며, 공인(工人)도 계절따라 산림에 들어가서 금·은·구리·철과 보옥(寶玉)을 캐다가 재원을 확보하기도 하고, 또 모든 쓰임에 공급도 하며, 의사는 병리(病理)를 연구하고 약성(藥性)을 감별하여 전염병과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는 요절을 미연에 방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왕정(王政)인 것이다. 왕정이 없어지면 백성들이 곤궁하게 마련이고, 백성이 곤궁하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해지면 세금의 부과가 엉망이 되고, 세금 부과가 엉망이 되면 인심이 흩어지고, 인심이 흩어지면 천명(天命)도 가버린다. 그러므로 급히 올바르게 서둘러야 할 것이 정(政)이다.
이는 필자의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원정(原政)'이란 글이다. 정치의 고전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글이다. 이 글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 진짜 정치다. 다산이 생각한 정치는 바로 올바른 것이다. 국회의원을 뽑은 총선을 바로 앞에 둔 시기에 과연 우리는 올바른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