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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클라우제비츠(1780~1831)의 '전쟁론'은 다시 봐도 명저다. 전쟁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란 그의 명언은 '삼국지' 해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삼국지'의 크고 작은 전쟁들과 신출귀몰한 전략 그리고 영웅들의 활약상은 우리가 밤을 새워가며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국지'의 구도를 바꾼 5대 전쟁이 있다.

첫째는 호뢰관 싸움이다. 동탁이 헌제를 옹립하고 국정을 장악하자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기치를 내걸고 전국에서 제후들이 떨쳐 일어난다. 원소를 좌장으로 세우고 스스로 근왕군이라 자처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입신양명과 함께 권력을 움켜쥐려는 잠재적 대권주자들의 경연장에 불과했다.

이 전투에서 동탁은 화웅을 잃고, 낙양에서 장안으로 수도를 옮긴다. 사실상 한나라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둘째는 관도대전이다. 조조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화북지역의 실력자인 원소가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 정벌에 나선다. 조조가 기병 5천으로 '오소'에 감춰져 있는 원소군의 군량미와 전쟁 물자를 모두 불태워 버리면서 전쟁은 싱겁게 끝난다. 조조가 중원을 장악, 최고의 실력자로 부상하고 원소는 몰락한다.

셋째는 삼국시대를 성립시킨 적벽대전이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된다. 오나라의 손권은 강남을 완벽하게 지배하게 되며, 정치식객으로 천하를 떠돌던 노마드 유비가 형주라는 근거지를 얻게 된다. 온갖 전략과 전술이 충돌하는 '삼국지'의 클라이맥스다.

넷째는 유비의 '유비스러움'을 보여준 이릉대전이다. 관우에 대한 복수와 의형제에 대한 의리 실천 외에는 아무것도 건질 것 없는 실익 없는 전쟁임에도 모든 것을 내던지는 유비의 인간적 매력과 답답함을 잘 보여준다. '의리'는 유비를 지탱케 하는 명분이었으며, 동시에 그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은 야누스였다.

다섯째는 육출기산(六出祁山)이라고 하여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을 감행하는 제갈공명의 여섯 차례의 중원 원정이다. 빈사 상태의 촉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는 계기가 됐다. 가정싸움에 패한 마속을 참수하는 '읍참마속'의 고사와 오장원 싸움이 압권이다.

'삼국지 5대 전투'는 읽는 재미도 그만이지만, 전쟁이 단순한 물리력의 사용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행위이며 냉혹한 국제관계와 정치역학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 할 수 있다.

북핵문제와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이 대한제국의 말기를 연상케 하는 지금, '삼국지'에서 평화와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를 천 번, 만 번이라도 읽겠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