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얇은 장애인·싱글맘 등 잇단 범죄 피해 '도시 이미지 추락'

경찰이 주요 매매 단지에 광역수사대 형사들을 상주시키고,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단속을 강화해도 허사다. '중고차 사기 무방비 도시 인천'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다.
도시 이미지 추락은 물론이고 중고차 산업 성장에도 악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이에 경인일보는 중고차 사기의 실태를 짚어보고 이를 근절하는 대책을 모색한다. → 편집자주
"반나절을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위압감을 느끼다 보니 마지막에는 자포자기 심정이었습니다."
강원도 인제군에 사는 김모(47·지체장애 1급)씨는 6개월간 모은 장애인 급여 300여만원으로 중고차 1대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함께 사는 어머니 박모(74)씨가 시장이나 병원을 갈 때 모셔다 드리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한 중고차 매매사이트에서 티볼리 차량이 150만 원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딜러에게 전화했다.
실제 매물이 있다는 말을 들은 김씨는 기쁜 마음으로 지난 22일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인 인천의 한 매매단지에서 만난 남성 딜러 2명은 티볼리를 보여줬지만 '전시차라서 속도제한이 있어 시속 60㎞ 이상은 달리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차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모자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딜러들을 반나절 넘게 따라다녀야 했다. 김씨는 결국 중고자동차매매단지에서 딜러들이 소개한 2012년식 올란도를 현금 200만원, 할부대출 900만원 등 1천100만원에 계약했다.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차를 구매하지 않는다고 하고 미리 지급한 200만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딜러들은 '돈은 이미 다 썼다'고 하며 현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모자는 올란도 차량을 가져오지 않고 오후 8시가 넘어서야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딜러들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차를 사고 싶다는 마음보다 빨리 계약을 끝내고 인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며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딜러들은 여러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사고유무, 자동차 상태 등 특별한 설명 없이 동그라미 친 곳에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경인일보가 매매단지 사이트에서 실매물을 확인한 결과 김씨가 구입한 올란도 차량의 실제 매매가격은 590만원으로 김씨가 계약한 금액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전모(36·여)씨는 지난해 9월 인천에서 중고차 사기 피해를 당했다. 전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딜러와 연락해 혼자 KTX를 타고 인천의 한 자동차매매단지를 찾았다.
그는 매매단지에서 만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딜러 2명에게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 위해 사는 차인 만큼 사고차, 렌터카, 택시부활차로 쓰인 것은 안된다'고 부탁했다. 딜러 역시 걱정하지 말라며 차량을 보여줬고 전씨는 13년식 카니발을 2천600만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전씨가 구입한 차량의 출고가는 2천300만원이었고, 중고차 판매가는 1천320만원이었다.
전씨는 "딜러 몇 명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해 정신없게 하더니 갑자기 계약서를 보여주며 사인만 하면 알아서 해준다고 해서 믿고 계약을 했다"며 "나중에 목포에 있는 공업사에서 '사고차이고 렌터카로 쓰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억울하고 답답했다. 계약과정에서 딜러들은 관련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은 지난 2014년 사업자 거래량 107만678대에서 2017년 113만4천713대로 점점 커지고 있다.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있어 중고차를 구입하는 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고차를 구입하는 주 고객층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층"이라며 "중고차 시장에서의 사기 등 범죄행위는 서민들을 울리는 악질적인 범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