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 측이 2일 진행된 첫 공판에서 성폭행 등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인 이날 오전 11시에 시작해 11시45분께 휴정, 점심 시간 이후 오후 2시에 속개됐다. 오후 공판은 검찰이 260호에 달하는 증거를 일일이 제시하고 구두로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안 전 지사의 변호인은 "행동(성관계 및 신체를 만진 행위) 자체는 있었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해 행한 것이 아니다"며 "위력의 존재와 행사가 없었고, 설령 위력이 있었다고 해도 성관계와 인과관계가 없으며, 범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두 차례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주장한 '애정 감정 하에 벌어진 관계'라는 주장을 거듭 반복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지난 4월 5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88일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안 전 지사는 재판부에서 신원과 직업 등을 확인 절차 외에는 특별한 발언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안 전 지사의 변호인은 "형법에서 정의하는 위력이란 물리적·정신적 측면에서 힘의 행사가 있어야 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압하기에 충분해야 한다"며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될 만큼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위력이 될 수는 없다"고 호소했다.
안 전 지사 측은 피해자 김지은(33)씨가 '주체적인 여성'임을 부각하기도 했다. 이 변호인은 김씨를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혼인 경험이 있는 학벌 좋은 여성"이라며 "공무원 지위를 버리고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무보수 자원봉사 자리로 옮겨온 주체적이고 결단력 좋은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었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검찰은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했다.
검찰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된 피고인의 막강한 지위와 권력,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했다"며 "극도로 비대칭적인 지위와 영향력을 악용했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출장지 등에서 비서인 김씨에게 담배·맥주 등을 자신의 방으로 가져다줄 것을 지시한 뒤 저지른 성폭력에 대해선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과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고강조했다.
'서로 간 호감에 의한 관계'라는 안 전 지사측의 주장에 대해선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며, 권력형 성범죄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르시시즘적 태도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로는 김씨가 비서실로 들어가면서 인계받은 매뉴얼 등 김씨와 안 전 지사 간 '수직적 권력관계'를 표현하는 것들로 이뤄졌다.
이에 안 전 지사 측은 "두 사람의 관계와 성폭력 사이에 인과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검찰 측은 "그 부분은 피해자 신문 과정에서 밝힐 것"이라고 맞섰다.
오후 공판에선 김씨가 지난해 7월 안 전 지사의 운전비서인 정모씨에게 성추행당한 내용이 관한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 측은 "김씨가 정씨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당해 비서실장 등에게 관련 내용을 하소연하기도 했는데,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조직 분위기로 미루어볼 때, 김씨가 안 전 지사에게 성폭려을 당했다는 건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안 전 지사 측은 "김씨가 정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의 행동을 볼 때 안 전 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피해자인 김씨는 방청석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날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검정 쟈켓을 입고 머리를 뒤로 묶은 김씨는 좌측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아 메모를 하는 등 재판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재판을 비켜보던 김씨는 오전 공판에서 검찰이 안 전 지사에 대한 구체적인 공소 사실을 읽어나가자 잠시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6일 오전 10시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날은 김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있을 예정이며 비공개로 진행된다.
안 전 지사는 비서 김씨를 지속적으로 성폭행·추행해 지난 4월 11일 형법상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특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업무상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송수은기자 sueun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