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같은 하루라도 길게 보내기도 하고 짧게 끝나기도 한다.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은 그대로지만 자신의 상황에 따라 느껴지고 변화하고 진행된다. 그것은 어떤 것에 기대한 만큼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믿음과 같다. 그 믿음은 스스로의 기대가 만들어낸 것으로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인 것. '저, 수줍음의 미소'로 4월에 피어나는 벚꽃은 어떠한 이름으로도 가질 수 없는 법. '내 심장에 붉은 화살 하나 꽂아 놓은' 그 즐거움이 커질수록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만다. 벚꽃은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고 벚꽃에 기댄 자신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 치 떨리는 배반'을 한 것은 벚꽃이 아니라 그것을 믿었던 자신일 뿐. 이렇듯 '다시는 사월의 몽환에 젖지' 않으려면 벚꽃을 '그녀'로 호명하지 말아야 할지니. '짧은 믿음'이 '긴 배반'으로 남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