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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녀를 믿을 수 없구나 //

저, 수줍음의 미소!

살포시 옷고름을 풀며 어서 오라, 어서 오라고

뜨겁게 안아달라고

찡긋, 유혹의 미소를 날리던 그녀!

둥근 달을 수줍게 만들었던 그녀!

내 심장에 붉은 화살 하나 꽂아 놓은 그, 녀, 가, //

어느새 사라졌다

언약 하나 없이 야반도주를 했다 //

이 치 떨리는 배반이여! //

나 다시는 너의 옷깃에 눈을 열지 않으련다

나 다시는 사월의 몽환에 젖지 않으련다 //

못된 가시내!

배재경(1966~)

권성훈교수교체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어디까지나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같은 하루라도 길게 보내기도 하고 짧게 끝나기도 한다.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은 그대로지만 자신의 상황에 따라 느껴지고 변화하고 진행된다. 그것은 어떤 것에 기대한 만큼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믿음과 같다. 그 믿음은 스스로의 기대가 만들어낸 것으로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인 것. '저, 수줍음의 미소'로 4월에 피어나는 벚꽃은 어떠한 이름으로도 가질 수 없는 법. '내 심장에 붉은 화살 하나 꽂아 놓은' 그 즐거움이 커질수록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만다. 벚꽃은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고 벚꽃에 기댄 자신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 치 떨리는 배반'을 한 것은 벚꽃이 아니라 그것을 믿었던 자신일 뿐. 이렇듯 '다시는 사월의 몽환에 젖지' 않으려면 벚꽃을 '그녀'로 호명하지 말아야 할지니. '짧은 믿음'이 '긴 배반'으로 남는 것과 같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