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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작가들은 무엇을 쓰고 있는지
구독은 독자에게 다가가는지 궁금
"'좋아요' 쌓여도 도토리도 안주네"
투덜댔지만 세상이 변할줄 몰랐던
내 좁은 생각에 머리를 쥐어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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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벌써 몇 년이 된 일이지만 생활고로 하소연을 하는 A 작가에게 누군가 조언했다. "이슬아 작가처럼 해 봐. 에세이를 매일 써서 사람들 이메일로 보내주는 거지."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내가 월 구독료 1만원의 '일간 이슬아'에 관해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에세이를 매일 쓰는 것도 힘든데, 그걸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그런 걸 하는 작가가 있다고? 그 말을 들은 A는 기획안을 만들어 SNS에 올렸고 꽤 성공적으로 구독자를 모았다. 나 역시 한 달 구독료 1만원을 입금했으나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A와 친한 사이라 그랬다.

나는 모 일간지에 주 6일, 그러니까 하루 빼고 매일매일 칼럼을 쓴 적이 있다. 1년 가까이 연재했는데 그야말로 영혼이 탈탈 털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긴 시간 연재했더라면 멀미하는 심정으로 내가 먼저 항복을 선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일간지 개편이 시작되며 그 코너가 사라져서 나는 몇 번이나 신문사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잘린 주제에 감사하다고 하다니! 하지만 내가 A 작가를 걱정한 건 매일 한 편씩 에세이를 쓴다는 것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1만원이라는 돈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수 있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글을 매일 아침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는 즐거움에라면 까짓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딱히 홍보 매체가 없는 작가는 SNS에 구독 서비스의 시작을 알릴 수밖에 없는데,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SNS 친구들이라면 응원의 의미에서라도 구독 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 백 명, 이백 명 금방 채울 수도 있을 것이었다. 1만원쯤이야. 하지만 그다음 달은? 또 그다음 달은?

"사람들은 너한테 미안해서라도 그다음 달이 될 때마다 고민할지 몰라. 잘 열어보지도 않는 메일을 받으려고 따박따박 구독 신청 연장하기가 좋겠어? 불편하게 느껴질 거야. 구독을 끊는 것도 마음 불편하고, 연장하는 것도 마음 불편하고. 너는 구독자가 점점 줄면서 어쩌면 열댓 명을 위해 매일매일 에세이를 쓰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 열댓 명이 있어서 그걸 그만둘 수도 없고… 네가 많이 피곤해질까 봐서 그래."

A는 내 말에 곰곰 고민했지만 이왕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일 더 미루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메일함이 무언가 심심해졌다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매일 오던 구독 서비스가 끝나 있었다. 여섯 명의 작가가 돌아가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보내주는 에세이 구독 서비스다. 아, 연장하지 않았구나. 연장은 어떻게 하는 거더라? 지난 메일을 뒤적여 입금할 계좌번호를 메모했다. 버튼 하나로 구독 연장을 한다거나 자동 연장을 한다거나 그런 세련된 시스템도 없다. 그저 원하면 아주 성가시게 아날로그 스타일로 알아서 해야 한다. 사실 내가 구독하는 메일링 서비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작가 한 명이 일주일에 두 번 보내주는 에세이 구독 서비스도 있다. 일곱 명의 작가가 매일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도 있고. 그래서 메일함에는 그들의 에세이가 쌓인다. 바쁠 땐 읽지 못한다. 읽기는커녕 메일을 열지도 않고 밀린 것들을 한꺼번에 삭제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쉬이 구독을 끊지는 못한다. 세 가지 이유다. 요즘 작가들이 무엇을 쓰는지 궁금해서고, 이런 메일링 구독 시스템이 정말 독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경로가 될는지 궁금해서고, 마지막으로는 '소박한 응원'이다. A는 메일링 서비스를 그만둔 지 오래다. 대신 젊은 작가들의 구독서비스는 점점 더 세련된 모습으로 늘어난다. 작가는 스스로 '쓰기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독자는 '쓰기 노동자'의 노동을 '구독료'로 지불하는 모습. 다른 것보다 나는 이 지점이 매우 기쁘다.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백 개씩 쌓이면 뭐 해? 도토리로 바꿔주지도 않는걸!" 하며 투덜댔는데. 세상이 이렇게 변화할 줄 몰랐던 몇 년 전 나의 좁은 생각에 혼자 머리를 쿵쿵 쥐어박으며.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