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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내려놓고 / 죽을 힘 다해 피워놓은 / 꽃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 봄나무들은 짐짓 연초록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 맑은 노래가 있지만 / 꽃 지고 나면 봄나무들 / 제 이름까지 내려놓는다. /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 / 꽃 내려놓은 나무들은 / 신록일 따름 푸른 숲일 따름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 꽃이 지면 같이 울지 못한다. / 꽃이 지면 우리는 너를 잊는 것이다. / 꽃 떨군 봄나무들이 /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피어나는 사태를 /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지지 않는다. /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 더 큰 꽃을 피워낸다. / 나무는 꽃이다. /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

이문재(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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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꽃은 피고 지고 떠나가지만 그 나무는 남는다. 꽃을 개화시킨 것이 꽃이 아니라 나무라서. 나무는 꽃이 사라진 다음에도 가지에 무수한 것들을 있게 한다. 잎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낙엽으로 한 해를 장식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봄에 피는 꽃나무들은 '꽃 지고 나면' 제각기 '제 이름을 내려놓고' 자신을 찾아간다. 가장 황홀한 순간도 한 때 일뿐 지나고 나면 기억이라는 잎으로 남는 것. 이 '기억의 잎'을 피어 올리는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을 보라. 꽃의 이름을 벗고 나무의 이름으로 있지 않은가. 꽃이 진 곳에 '연초록'이 한창인 것처럼 '꽃 떨군 봄나무들이 신록을 이루면서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던가. 나무가 있는 한, 꽃은 지지 않으며 설령 진 꽃이라도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환원되기 위한 것. 나무가 온몸이 꽃인 것은 스스로 생멸을 가능케 하는 존재이기에. 무엇인가 생산하고 있는 당신도 '온몸으로 꽃'이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