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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부씩 팔리던 서정윤·도종환 책
문단 입문시절엔 참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작금의 문학적 환경은 급변
사회로부터 외면 천덕꾸러기 전락
여지는 '감동'을 더 하는 것 뿐인데


정한용 시인
정한용 시인
필자는 1980년 문단에 나와 40년 넘게 글을 써오고 있다. 시집을 일곱 권, 비평집 등 에세이를 네 권, 영문시선집을 두 권, 그리고 잡다한 책 열 권 정도를 출판했다. 평생 수백 권의 저서를 남긴 분들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직장 다녀 밥 먹고 살면서 이만하면 열심히 살지 않았나 자위해본다. 1980년대엔 펜으로 원고지에 쓰던 것이, 1990년대 들어 타자기로 콕콕 눌러 찍었고, 2000년대 들어와 컴퓨터가 대세가 되었다. 지금은 물론 훨씬 성능 좋은 워드 프로그램으로 글을 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음성인식으로 쓰거나, 아예 AI가 내 머릿속을 스캔해 자동으로 작품을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처음 문단에 발을 들이던 그 시절엔 문학이 참 화려해 보였다. 서정윤의 '홀로서기'나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같은 책은 백만부씩 팔렸다고 한다. 황지우나 이성복 같은 시인은 문학의 범주를 넘어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그때만 해도 문학이 한 사회의 등불이 된다는 공통된 믿음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등불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자부심을 지녔다. IMF를 거치고 세기말을 넘기면서 신자유주의가 절정으로 치닫기 전까지 그랬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급작스러운 것도 아니었지만, 문학적 환경은 썰물처럼 빠르게 변해갔다. 세상이 변했으니 세상을 반영하는 문학도 변하는 게 당연할 터.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사태가 심각하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후 십 년을 보내면서 독자들은 문학으로부터 급격히 멀어졌다. 시인들은 더는 주목을 받지 못했고, 문학적 이슈는 사회에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십 년이 흐른 지금, 문학은 완전히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지금 독자에게 시는 무슨 소린지 모를 해독 불가의 암호처럼 취급되고, 가늘게 목숨을 잇던 소설도 재미없는 넋두리로 외면받고 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참으로 역설적으로 시집과 소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일반 독자와 상관없는, 문인들끼리의 자기과시이지만 말이다. 독자가 없는 세계에 문학서가 낙엽처럼 날리고 있다. 마치 종이신문 구독자가 줄어들어 인쇄하자마자 폐지로 버려지듯, 시집과 소설집이 출판되자마자 구석에 처박히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사실을 직시하자면, 지금 대부분 문학서는 자비로 출판이 되며, 그렇지 않은 책도 거의 초판을 넘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진다. 저자의 자기만족 외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나마 시, 소설을 읽는 사람은 작가 자신, 즉 생산자가 바로 소비자이다. 상업적 판매가 작품 가치의 척도가 아니라거나, 이럴수록 문학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문학의 전통적 효용가치를 믿는, 낭만적 관점을 지닌 이들로 보인다. 문학의 기본은 독자에게 정보와 감동을 주는 것이지만, 이제 '정보'로서의 역할은 사라졌다. 그러니 이제 '감동'을 어떻게 전해줄지를 연구해야 하는데, 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작가도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학 외적 장르가 훨씬 풍부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이런 장르가 문학적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운신의 여지가 남아 있긴 하다.

양식의 변화에도 작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통적 양식의 시나 소설도 그 형태가 변해가는 것이 순리이다. 요즘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는 '디카시'나 '웹소설'을 '본격 문학'이 아니라고 낮추는 작가를 간혹 본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근본주의 수구세력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또 종이책만 읽고 전자책은 보지 않는다고, 이게 무슨 자랑인 양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스스로 부적응자임을 커밍아웃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학은 어디로 가서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가까운 미래에 멸종되어 화석으로만 남을까? 슬프지만, 꼭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