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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 두 눈이 멀어버리는 /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 하늘마저 능멸하는 / 슬픔이라면 /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이원규(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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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에는 세상의 권세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세속적인 것을 의미하며 순수성이 결여된 상태로서 불명예스러운 데서 발견된다. 그만큼 이름 석자 남긴다는 것은 일생동안 자신을 성찰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여름이 깊어 갈수록 화려하면서도 정갈하게 꽃을 피우는 능소화같이 온몸으로 강렬한 땡볕을 견뎌내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법. 이처럼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라는 찬사를 받기 위해 '두루 안녕하신 세상'을 향해 '내내 핏발이 선' 상태로 '눈총을' 받아내야 한다. 순간적으로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도 그 사랑을 지켜주었을 때 명예스러운 것이 되는 것 같이. 순수한 의미에서 사랑에게 당신을 남기고 싶다면 그 대상을 끝내 보호해야 하는 것. 그렇다면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이 오는 순간에도 당신은 당당해질 수 있다. '여성'과 '명예'라는 꽃말을 가진 능소화를 보면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 저리도 오래 피어 있구나라고 감탄하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