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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오랜 과거부터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특히 18~19세기는 두 나라의 지식인들이 문화를 활발하게 교류하던 시기였고, 국경을 뛰어 넘어 진실한 소통들이 이뤄졌다.

실학박물관의 특별전 '연경燕京의 우정'은 제목 그대로 그들의 우정을 되짚어 보며 실학은 물론 역사의 의미를 조명해 보는 전시다. 홍대용과 박제가, 김정희 등 중국으로 간 조선의 실학자들이 중국의 학자들과 무엇을 주고 받았으며, 그들의 우정은 또 얼마나 깊었는지를 전시장 곳곳에서 느껴볼 수 있다. 

韓·中 수교 30주년… 18~19세기 관계 밀접
실학자들, 국경 넘어 진실한 소통들 나눠
박제가 '호저집' 중국인사 180명 넘게 등장
김정희·주학년과 '송별연' 그린 작품도
연경의 우정
실학박물관 특별기획전 '연경의 우정' 전시 전경.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연경 유리창'에서 전시는 출발한다. 청나라 수도인 연경(현재의 북경)의 유리창 거리는 고 서점가로 중국 문화의 수입과 한중 지식인의 교유가 이뤄지던 명소였다. 서점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교유는 홍대용 이후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으로 이어졌고, 그곳은 특별한 기억과 그리움을 담은 장소가 됐다.

그중에서도 홍대용은 연경의 '천승점'에서 엄성이라는 천애지기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눴다. 엄성은 학문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요절했는데, 홍대용이 선물한 묵향을 맡으며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나, 임종 소식을 전해 들은 홍대용이 보낸 제문이 엄성의 2주기 제삿날에 맞춰 도착했다는 이야기 등이 유명하다.

전시된 '고항적독(古抗赤牘)'에는 엄성과 반정균, 육비 등이 홍대용에게 보낸 편지로 연경에서 헤어진 이후 그리움이 담겨있으며, 엄성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홍대용의 초상화 등을 볼 수 있다.

연경의 우정
엄성이 그린 홍대용 초상.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박제가의 경우 한중 지식인 네트워크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는 조선후기 실학자 가운데 중국을 가장 많이 다녀온 인물이다.

박제가가 중국 문인과 교유한 시와 편지 등을 엮은 '호저집'에는 180명이 넘는 중국인사가 등장한다. 이 가운데 박제가는 양주팔괴(청나라 양주에서 활약한 여덟 명의 화가)로 잘 알려진 나빙과 여러 차례 만나 우정을 나눴는데, 귀국한 뒤에도 나빙과 편지·선물 등을 인편으로 주고받았다. 나빙이 그린 박제가의 초상과 전별 기념으로 그려준 월매도, 그 안에 담긴 시 등은 그들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였는지를 보여준다.

박제가의 인적 네트워크는 19세기 추사 김정희로 이어졌다. 김정희는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가 열어놓은 청나라의 학계와 문예계에 관한 소식과 정보를 접했다.

김정희는 당대 최고 대학자인 옹방강과 완원을 만났고, 그들은 고증학과 금석학 등 수많은 이론과 학설을 전해줬다. 이를 통해 김정희는 '청조학(淸朝學)' 연구의 일인자로 거듭나게 된다.

연경의 우정
추사 전별도와 전별시.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작품 '추사 전별도와 전별시'는 김정희와 교류한 화가 주학년이 당시 그와의 송별연 장면을 그려놓은 것이며, 완원이 청대 경학의 성과를 모아 간행한 '황청경해', 조선의 금석문 연구서인 '해동금석원', '소동파입극도' 등이 전시돼 있다.

북학파를 중심으로 한 문학적 소통에서 학자 문인과의 교류로 새로운 학예 풍토를 형성하기까지. 18~19세기에 이뤄진 그들의 깊고 넓은 관계는 국경과 시대와 공간을 넘나든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보는 것처럼 따뜻한 마음까지 함께 전해줄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