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동물도 생명이에요. 거래하지 맙시다.", "비상식적 환경에서 강제 번식시키는 개공장 폐쇄.", "인간 욕심 때문에 강아지와 고양이가 원치 않는 출산 반복하지 않기 바랍니다."
15일 시민참여 온라인 민간 플랫폼 캠페인즈가 진행 중인 '번식장 폐쇄를 위한 루시 프로젝트 20만 서명 캠페인(동물권행동 카라 주최)' 참여자들이 남긴 댓글 일부다. 이달 초만 해도 하루 700~800명 수준이던 서명자 수가 양평 번식장 개 사건이 알려진 지난 5일 이후로는 매일 3천~8천명으로 불어나 이날 오후 5시 기준 총 5만5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최근 양평군의 한 주택에서 1천200여구에 달하는 개가 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번식장 반려동물 학대'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10년여 전부터 외쳐온 '번식장 폐쇄' 등 반려동물 매매행위 근절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지난 2~3년 간 1천200여구에 달하는 개를 집에 방치해 굶겨 죽인 혐의로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70대 남성 A씨는 경찰에 "고물 수집 중 '키우던 개를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한 마리에 1만원씩 받고 데려왔다"고 진술했고 동물권단체 케어엔 "번식장에서 개를 넘겨받았다"고 털어놨다.
하루 700~800명서 3천~8천명 늘어
동물보호단체 근본대책으로 요구
번식장은 일정 연령 이하 반려견 암수컷을 케이지(철장)에 넣고 번식하도록 해 어린(생후 2~3개월) 분양용 반려견을 대량 생산하는 동물생산 도매업장을 말한다. 주거시설이 적고 외진 지역 비닐하우스에서 발정유도 약품까지 투여하는 인위적 번식 등 과도한 학대가 동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10년여 전부터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번 사건 이외 불과 4개월 전에도 경기도 내 일부 번식장은 관할 지자체 허가를 받아 운영하면서도 끔찍한 학대 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카라 측이 조사에 나선 연천군의 한 번식장은 관련 규정대로 갖췄어야 할 청결 상태와 격리공간, 분만실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부분 케이지를 뜬장(바닥판 없이 아래가 뚫린 철창) 상태로 유지하고 있었다.
일부 번식장에서 과도한 번식 행위로 생식기가 잘려나가 사망할 만큼 학대를 당한 뒤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5~6세에 이르면 이번 양평 사건처럼 불법 처분되거나, 식용으로 팔려간다는 게 동물보호단체들의 설명이다.
카라는 지난 2014년 반려동물 대량생산 실태 등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대책을 요구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정부가 동물보호법 개정(오는 4월 시행)에 나서며 관련 처벌 강화와 단속 확대 등을 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역시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며 '번식장 폐쇄' 등과 함께 반려동물의 매매행위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카라 고현선 활동가는 "결국 규제만 일부 강화한다는 건데 그 틀 안에서 또 큰 차이 없는 학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고, 케어 박소연 활동가는 "단기적으로 실현이 어렵다고 해도 매매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부와 업계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
■'루시 프로젝트'란?
강아지와 고양이의 복지는 등한시 한 채 번식장에서 여러 품종의 어린 동물을 받아 백화점식으로 진열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취해온 펫숍 영업을 금지하기 위해 동물권행동 단체 카라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 책임 있는 브리더(번식자)가 번식시킨 어미와 한배 새끼들과 지내는 건강하고 사회화된 아기동물을, 지내고 있는 곳에서 직접 분양받도록 규정하고 딜러에 의한 인터넷 판매는 물론 펫숍의 법적 금지를 이끄는 게 목표.
'루시'는 지난 2013년 영국의 번식장에서 구조된 반려견 이름으로, 6년 간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척추가 휘고 뇌전증과 관절염을 앓다 사망. 영국 동물단체 'Pup Aid'에서 사망한 '루시'를 통해 공장식 번식의 문제를 사회에 알려 나갔으며 많은 단체와 시민들의 동참 끝에 10년 간 캠페인의 결실로 루시법(6개월령 미만 개나 고양이 판매금지 등)이 제정되기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