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쯤 되면 적전분열을 넘어 지리멸렬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한밤에 이뤄진 우리 정당 역사상 초유의 대선후보 교체, 그리고 당원 투표에 의해 그것이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본 유권자들은 자연스럽게 ‘헌납’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음직하다. 상대 진영에서 한판 겨룸을 포기하고, 자진해서 대권을 갖다 바치는 형국과 다름없다. 상식적이고 보통의 생각을 가진 그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이재명 정부’를 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주말 취약지역인 영남에서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는 ‘경청투어’를 이어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정치는 말이야.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져. 그러면 우리가 이기는 거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을 그의 말투까지 흉내 내가며 인용할 정도로 이 후보는 여유를 드러내 보였다. 옅게 미소 짓는 후보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했고, 지지자들은 웃음으로 호응했다.
사법부를 향한 경고도 이어갔다. 이 후보는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를 두고 ‘최후의 보루가 우리를 향해 총구를 난사하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6일로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겨냥한 압박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저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황당한 세상을 우리가 왜 못 이겨 내겠나’라는 말로 아직도 사법 리스크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지지층을 달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이 후보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 그의 정부를 어렵지 않게 예감하는 국민들일지라도 상당수는 사실상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초유의 대통령이 등장하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의 그런 염려는 민주주의 국가의 구성원으로선 당연한 것이고, 정상적인 사고의 결과다. 이 후보는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려하는 중도층과 보수층을 향해 확고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안심시키는 것은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처신이다. 지지층의 결속을 계속 유지해 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행동이고 태도다. 포용과 통합의 메시지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