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숫자 읽기 등 어려움 겪어
공직선거법상 보조 역할은 제한
보조용구·특성 고려 안내 필요

“신분증 제출, 이름 확인, 지문 찍기, 투표용지 받기, 빈칸에 도장 찍기….”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29일 오전 10시30분께 인천 미추홀구 주안3동 행정복지센터 앞. 인천사회복지서비스원이 운영하는 중증장애인생활시설 ‘미추홀푸르내’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인 방극동(44)씨 등 6명이 시설에서 연습했던 투표 순서를 되뇌었다.
신분 확인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방씨가 본인 확인기에 지문을 찍지 못하자 옆에서 그가 손가락을 꾹 누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투표용지를 받아 홀로 기표소에 들어갔다 나온 방씨가 투표용지를 펼쳐 들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시설 생활지도원 손소미(44)씨가 투표용지 접는 것을 돕고, 기표함까지 안내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익숙하지 않은 투표장 환경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투표를 마친 뒤에는 뿌듯해 하는 모습이었다.
이번이 첫 투표라는 방씨는 “좋았다”고 답했다. 함께 투표하고 나온 발달장애인 김귀자(54)씨도 “숫자를 읽을 줄 몰라 시설에서 몇 번째 칸에 찍을지 여러 번 연습했다”며 “다음 투표 때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원 호매실동에서 같은 날 사전투표에 나선 발달장애인 전해은(28)씨에게도 투표 참여는 쉽지만은 않았다.
이날 오전 11시30분께 사전투표소인 호매실동 행정복지센터에 들어선 전씨의 표정은 투표소 내부가 시민들로 붐비자 굳기 시작했다. ‘투표소는 3층’이라고 되뇌 면서 3층에 도착했지만 신분증을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복지카드로 신원 확인은 가능했지만 투표사무원에게 관련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당혹감은 커졌다. 어렵사리 투표를 마친 전씨는 “안내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없고 무섭게 말을 해 압박감이 느껴졌다”면서도 “후보자들의 장애 관련 공약이 거의 없는 걸 보면서 매순간 투표를 다짐한다”고 했다.
이날 인천과 수원에서 만난 발달장애인들과 활동보조인들은 투표 보조를 허용하는 등 이들이 소중한 한 표를 보다 문제 없이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글이나 숫자를 읽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기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이들에 대한 투표 보조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시각장애 또는 신체장애로 인해 혼자 기표가 불가능한 경우만 가족 등이 투표를 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선거에서 늦었지만 일부 후보가 발달장애인을 위해 읽기 쉬운 공보물을 발행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도 “발달장애인이 투표장에서 제대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투표보조용구 도입 등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했다.
투표 현장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이 좀 더 고려됐으면 한다는 제언이 있었다. 박윤선 경기피플연대 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특히 민감해서 위계적인 상황이라고 느끼면 경직되는 경우가 많다”며 투표 현장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을 잘 고려해 안내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백효은·목은수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