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나뿐일 특별한 날」,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등은 불륜을 다룬 소설로 인기를 끌었다. 「___특별한 날」에서 남편의 외도때문에 유폐의 나날을 보내던 여주인공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첫 섹스에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여성 독자들은 이런 여주인공을 통해 「금기에 대한 반역」을 공유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아니면 IMF이후의 경제적 심리적 혼란을 뒤짚는 정서적 위안을 얻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냥 통속적인 재미에 빠져들었을까.

11일 개봉하는 「해피 엔드」도 두 소설처럼 불륜이 소재다. 관객들은 과연 무엇을 느끼고 공유하게 될까. 시작과 함께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는 「해피 엔드」는 소설들에 비해 좀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다. 영화는 불륜에 이르는 과정따위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부적절한 관계는 시작됐고 여주인공 최보라(전도연)는 「욕망」과 「가정」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거듭한다.

영어학원장으로 딸 하나를 둔 최보라는 왜 파행적인 사랑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걸까! 원초적인 본능과 실직한 남편 서민기(최민식)에 대한 실망감의 중간쯤이다. 관객들은 우선 옛 애인 김일범(주진모)과의 섹스에서 행복을 느끼는, 자신의 성본능에 집착하는 최보라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에 마음을 다잡는 최보라의 모습이 다가온다.

그러나 집착은 쉽게 수그러지는게 아니다. 옛 애인의 집착때문에 서성이는 사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집착은 살의(殺意)로 확대되고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여자의 불륜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얘기인가. 신문기사 1단짜리의 통속적인 소재와 결말은 충분히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신예 정지우 감독은 『자신의 이기심, 욕망등에 대해서는 솔직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점점 얄팍해져가는 99년 가족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 감독은 최보라의 영혼을 등장시켜 회한의 표정으로 근조(謹弔)등을 바라보게 하고 서민기가 딸과 함께 쓸쓸히 아침을 맞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으로 그 의도의 일단을 드러냈다.

영화는 이런면에서 통속적·상업적인 재미와 세기말을 살아가는 30대 부부들의 행복의 본질에 대한 캐묻기의 중간지점에서 서성된다. 반면 오히려 지나치게 생략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깔끔한 영상은 명쾌하다. 두 주인공중 특히 최민식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