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사내들'과 '간첩 리철진', 단 두편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 온 장진 감독의 영화에는 재기발랄한 상황과 블랙코미디적 웃음 그리고 페이소스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세번째 작품인 '킬러들의 수다'(12일 개봉) 역시 스케일은 커졌지만 장진 감독만의 독특한 색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데서 어김없는 '장진표 영화'라 할만하다.우선 '킬러 캐릭터'가 그렇다. '킬러들의 수다'의 킬러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강인하고 잔인한 할리우드식 킬러들이 아니다. 그들은 직업적으로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평상시는 친근하고 포근한 이웃집 형같은 모습의 '4인조 남성 킬러들'이다. '간첩 리철진'의 간첩 캐릭터가 기존 관념을 파괴했던 것처럼 '킬러들의 수다'의 킬러들도 총보다는 수다로 세상을 얘기한다.
킬러들의 수다는 영화로 풀이하면 킬러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대한 킬러들의 한바탕 넋두리요 소동이다. 세상은 왜 킬러를 필요로 하는가? 영화는 '우리들 맘속에 누군가가 잘못되길 바라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심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태초부터 있어왔던 복수심의 또다른 모습이다.
리더격인 상연(신현준), 총을 잘 다루는 재영(정재영), 폭탄 전문가인 정우(신하균) 그리고 상연의 친동생으로 컴퓨터에 능숙한 하연(원빈)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들. 이들에게 살인을 부탁하는 의뢰인들의 사연은 증오나 복수뿐만 아니라 등이 썩어나가는 영감을 보다못한 할머니등 가지각색이다. 킬러들이 모두 사랑하는 미모의 방송 앵커가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죽여달라고 의뢰하는 부분에서는 세상이 왜 킬러를 필요로 하는지를 우화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이같은 의뢰인들의 사연들을 통해 요지경 세상을 풍자하고 뜻밖의 상황과 한박자 늦춘 블랙코미디로 웃음을 촉발한다. 자신이 죽여야 하는 임산부와 사랑에 빠진 정우의 사연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대표적인 경우.
장진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킬러를 통해 표현된 이같은 '킬러들의 수다'는 코미디와 액션 그리고 휴먼드라마가 혼재해 있는 퓨전 장르라 할만하다. 세련된 솜씨로 코미디와 액션 그리고 휴먼드라마를 묶어낸 장진 감독의 연출력과는 별도로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등 한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이런 '영화의 퓨전성'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대신 폭파신, 저격신, 항공촬영외에 햄릿공연과 저격을 웅장하게 묶어낸 하이라이트등 스케일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만큼 어떤 흥행결과를 빚을 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상연역의 신현준은 기존과는 다른 몸에 힘을 뺀 연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았고 하연역의 원빈은 TV에서보다 훨씬 이쁘게(?)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