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남구 숭의4동 수봉공원내 인천시궁도협회 사무실 앞. 한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에도 궁사 10여명은 가볍게 몸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습사무언(習射無言)'. 공원내 무덕정 국궁장 사대 앞에 ‘말없이 활쏘기를 익히라’는 뜻의 돌 표지판이 눈에 띈다. 침묵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에 잠시 긴장감이 흐른다. 과녁까지의 거리는 145m.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맞힌다. “관중(貫中·과녁을 정확하게 맞힘)이오.” 같이 활을 쏘던 궁사들은 이 순간 환호하며 스트레스를 잊는다.
각궁(角弓)이라 불리기도 하는 국궁은 삼국시대 때 주로 전쟁이나 사냥용으로 사용됐다. 조선시대까지 역대 왕과 양반들의 오락거리로 애용되기도 했다. 요즘에 국궁은 가족 단위로 심신을 단련하기에 제격이다.
조상준(52) 시 궁도협회 전무는 “활을 쏘아 관중 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며 “도심 한 복판 산 자락에서 활을 쏘다 보면 자연스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도 상쾌해 진다”고 국궁 예찬론을 폈다.
현재 등록된 회원은 1천500여명. 대부분 집과 가까운 국궁장에서 활쏘기를 즐기고 있다. 연령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국궁도 실력에 따라 단증을 딸 수 있다. 1~9단으로 나뉘며 3단까지는 각 시도지부에서 승단대회를 열고, 4단 이상은 대한궁도협회가 승단심사를 한다. 한 번 활을 잡으면 한 순(巡)에 5대씩 쏘는데 승단대회에서는 45대를 쏜다.
현재 인천에는 9개의 국궁장이 있다. 남수정(인천대공원내), 무덕정(수봉산), 연무정(계산동), 구월정(구월동), 남호정(수산동), 서무정(검암동), 연수정(연수체육공원내), 청룡정(다남동), 현무정(마전동) 등이다. “활쏘기는 전신운동이에요. 시위를 당길 때 허벅다리에 힘을 주면 단전호흡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죠. 하지만 손으로만 활을 쏘면 화살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고, 하체가 고정되지 않으면 화살은 힘이 빠져 과녁까지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심재성(55) 시 궁도협회 기술고문은 활을 잘 쏘려면 잡념을 없애야 하는데 정신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국궁은 관중을 하기보다 예절을 더욱 중시한다. “양궁과 구별하기 위해 국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국궁의 원래 명칭은 궁도입니다. 바로 예를 지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박창규 회장은 궁도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충효정신을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올해의 포부를 밝혔다.
◇국궁이란=활로 화살을 쏘아 145m 앞에 있는 과녁을 맞히는 경기다. 정식 명칭은 궁도(弓道). 국궁장은 입회비와 3만∼5만원의 월회비를 받고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초보자도 빠르면 보름 넉넉히 잡아 한달이면 사대에서 활을 쏠 수 있다. 강습기간중 활과 화살 등 장비는 무료로 빌려준다.
국궁과 양궁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활에 화살을 거는 위치가 다르다. 국궁은 오른쪽에, 양궁은 활의 왼쪽에 건다. 국궁은 양궁보다 멀리 날지만 정확도는 떨어진다. 국궁은 대나무와 물소뿔, 쇠심줄 등을 재질로 사용해 탄력이 커 사거리가 400∼500m인데 비해 양궁은 그에 훨씬 못미친다. 국궁은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이지만, 양궁은 30∼90m에 불과하다. 문의:시궁도협회(875-5858)
[인터뷰] 박창규 인천궁도협회장
“우리 전통문화인 국궁의 법도와 그 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습니다.”
인천궁도협회 박창규(59·시의원)회장은 “1860년대 우리 선조들은 오락거리로 즐겼지만 국궁은 생활체육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가 깊은 스포츠”라며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국궁을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충효사상이 깃든 전통문화인데도 양궁에 밀려 홀대받아 안타까웠다는 그는 올해 일선 초중고와 대학에 궁도교실을 개설해 궁도 보급에 주력할 생각이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도심 속 공원에서 자연과 벗삼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국궁의 매력으로 꼽은 박 회장은 아직도 노인들만 하는 레포츠로 알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활쏘기는 양팔만 쓰는 단순운동으로 여기기 쉽지만 실제론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어야 가능한 전신운동이에요.” 활시위를 당기고 놓으면 근육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 활쏘는 사람의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고, 목표를 맞히기 위해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단전호흡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양궁에 밀려 인기는 떨어지나 우리나라의 국기는 태권도도 양궁도 아닌 바로 궁도”라며 “전통예절과 법도가 무너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기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궁도 보급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