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유명한 `적벽(赤壁)'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싸움터다. 조조의 80만 대군과 손권·유비의 연합군이 박진감 넘치는 대접전을 펼친 곳이다.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써서 거짓 투항을 모의하는 주유와 황개, 조조를 돕는 척 모든 배를 묶는 `연환계(連環計)'를 일러주는 방통, 화공에 필요한 동남풍을 부르겠다며 짐짓 하늘제단에 기도를 올리는 제갈량, 마침내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적벽 아래 양자강으로 침몰하는 조조의 선단(船團)…. `삼국지연의'를 읽어본 사람은 흥미와 스릴 만점인 `적벽대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유명한 적벽은 동파 소식(東坡 蘇軾)의 `부(賦)'가 쓰여진 무대다. 싸움터 적벽과 문학의 고향 적벽은 같은 장소가 아니다. 같은 호북성(湖北省) 양자강변에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떨어져 있다. 더욱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은 정사(正史) `삼국지'에 기록된 곳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에 꼽히는 대문장가 소동파는 송의 원풍 5년(1082년) 적벽 아래 뱃놀이에서 `적벽부' 2편을 남겼다. 소동파 역시 `적벽'이라는 같은 이름 때문인지 약 880년 전 영웅호걸들의 덧없는 자취를 추억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가 닿는 곳은 바람 맑고 달 밝은 자연 속에서 욕심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청아한 삶이다.
 위의 적벽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파주 임진강변에도 적벽이 있다. 문산읍 임진리에서 적성면 어유지리에 이르는 6㎞ 구간에 높이 20m에 이르는 수직 절벽이 마치 강을 지키듯 병풍처럼 연이어 펼쳐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특히 해질 무렵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이 비껴들면 절벽이 붉은 빛을 띠면서 임진강물과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이룬다 하여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찾았다고 한다. 이곳은 소동파의 적벽 못지않게 수려해서 진작부터 적벽 혹은 동파적벽으로 불려왔다. 파주시가 적벽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기초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민통선에 가까워 그동안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르겠다. <楊勳道(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