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말 유럽에 강력한 매독균이 출현했다. 흉칙한 증상과 고통을 안겨주는 이 병은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뱃사람과 군인이 옮기는 병이라는 사실은 드러났지만, 원인과 전파경로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병명이 나라마다 달랐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병이었고, 이탈리아·독일·영국에서는 프랑스병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에스파냐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투르크에서는 기독교병, 일본에서는 포르투갈병 혹은 중국병이라고 했다. 혐오스러운 질병을 '네 탓'으로 돌린 대표적인 사례다.

 20세기 초반 미국은 여름마다 '폴리오의 공포'에 휩싸였다. 폴리오(poliomyelitis)는 '급성회백수염'이 정식명칭인데, 일반적으로는 '소아마비(infantile paralysis)'라고 했다. 인도의 풍토병인 이 병은 유럽을 거쳐 미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1948년 전자현미경을 통해 병원균이 확인되고 인공배양될 때까지 실체와 전염경로, 예방책을 알 수 없는 속수무책 돌림병으로 여겨졌다. 여름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시골로 피신시키고, 병이 옮는 장소로 알려진 수영장에 절대 가지 못하게 했다. '소아마비'라는 병명은 주로 영·유아와 아동이 걸리는 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폴리오균의 공격 연령은 점점 높아져, 15~25세 청소년과 청년층으로 확산되었다. 폴리오 공포는 1950년 중반 소크의 백신과 경구용 세이빈 백신이 등장하고서야 수그러들었다.

 축산업계가 '조류독감'을 '에이아이(AI)', 즉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라고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조류독감'이라는 말이 '날개 달린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퍼뜨리는 무서운 질병'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지로 인한 공포를 '새들 탓'으로 슬쩍 돌리지 말고, 차분히 지켜보고 대응하는 게 상책일 터이다.
/楊 勳 道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