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저녁 오랜만에 2명의 아들과 함께 재래시장을 찾았다.
학원을 다녀와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재래시장을 가자는 아빠의 요구에 흔쾌히 따라 나섰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 부터 한달에 1~2번씩 아빠의 손에 이끌려 반 강제적으로 이곳 재래시장을 와봤기 때문에 이날도 아이들은 피곤함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탔다.
사실 기자가 6년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재래시장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이것 사달라, 저것 사달라' 떼를 쓰는 아들에게 힘들게 살아가는 노점상들과 길모퉁이 작은 의자에 걸터 앉아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상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름대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였다.
1천~2천원 짜리 물건을 팔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흥정하는 이들의 생활 현장은 아이들에게 생생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노점의 천막에서 숨쉬기 조차 힘든 여름이든, 칼 바람에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날씨가 아무런 방해가 될 수 없는 이들의 모습에 '어린 아이들이 뭔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는 습관적으로 여름과 겨울에, 그것도 가장 더울 때와 가장 추울때 더욱 아이들의 손을 끌고 이곳을 찾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주말 이곳을 찾은 아들의 눈은 예전같지 않은 시장의 모습에 의아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참 장사를 해야할 초저녁 시간이었지만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았고 시장은 열심히 살아가는 상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이면 오고가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좁은 길을 꽉 메웠을텐데 시장 골목은 한산한 채 뒤늦게 문을 닫기위해 물건을 챙기는 상인들의 힘없는 모습뿐이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선 순대시장은 아이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많은 시장 상인들이 하루 장사를 끝내고 소주잔을 기울이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이날은 20여개의 점포 대부분이 빈 자리 뿐이었다.
기자가 20여년 단골인 순대집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주인 아주머니는 '더 이상 못해 먹겠다'며 푸념부터 늘어 놓았다.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어봐야 5만원도 벌기 힘든데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아주머니는 '이제 이것도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어려운 삶을 한탄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장사가 안되는 것 보다 더 열(?)받는 일이 있단다.
'공무원들이 파업을 하겠다'는 신문을 볼때마다 욕이 저절로 나온다며 흥분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죽을 맛인데 자기들 권리만 찾겠다고 파업을 하는 공무원들은 '나쁜 X들'이라며 욕을 퍼부었다.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이 왜 노조를 만들고, 왜 파업을 하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무원들까지 파업을 한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고 서민들은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이 평범한 서민들의 생각이다. 공무원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기에 앞서 이같은 평범한 국민들의 생각을 먼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이것이 국민들이 기대하는 공무원들의 참 모습이기 때문이다. /박승용(사회부 차장)
서민의 눈에 비친 공무원 파업
입력 2004-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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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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