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 것은 권총이었지만/그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당신의 손가락이었지만/원수의 가슴을 꿰뚫은 것은/성난 민족의 불길이었네/온 세계를 뒤흔든 그 총소리는/노한 하늘의 벼락이었네」

동탁 조지훈 시인의 「안중근의사찬(讚)」중 일부다.

항일 민족영웅 안중근(安重根)의사는 32세라는 짧은 삶을 누구보다 굵고 크게 살았다.

安의사가 만주 여순감옥 수감중일때 쓴 묵서(墨書)중 일부는 보물 569호로 지정돼 그의 높은 정신세계를 빛내고 있다.

1909년 만주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쏴 죽이고 이듬해 3월 순국때까지 쓴 2백여점의 서묵중 20여점은 국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이 된지 오래다.

특히 서묵중 「百忍堂中有泰和」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은 너무나도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영인본(影印本)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서묵의 安의사 손바닥 낙관을 보면 그의 강인한 독립의지와 함께 숭고한 애국정신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安重根의사, 그가 순국한지 올해로 꼭 90주년이 됐다.

취재진은 安의사가 적의 심장부를 겨눴던 하얼빈역을 찾았다.

하얼빈은 우리나라 남한면적과 비슷한 인구 3백50만명의 중국 8대도시중 하나로 흑룡강성(黑龍江省)의 수부도시다.

중국에서 상해(上海)와 함께 서구적 분위기를 가장 많이 갖고 있어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거사장소였던 하얼빈역 앞으로 펼쳐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천루(摩天樓)가 어지럽게 다가왔다.

지하상가와 잘 닦인 포장도로, 간간히 눈에 띄는 조선말 입간판이 긴장감을 풀어준다.

역사 앞쪽으로 들어선 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국내가요 또한 낯설지 않다.

분명 그 곳에서도 우리네 여느 대도시의 자유분방함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특히 대형 브로마이드 형태의 입간판으로 세워진 중국 최고의 축구스타 「하오하이동」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중앙선 없는 도로를 자동차들이 아찔하게 질주하는 모습하며 도로의 절반까지 비집고 나온 노점상, 횡단보도가 없어 목숨을 건채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

다소 생경스런 풍경들이 이내 이국땅임을 실감케 했다.

安의사가 이 곳 하얼빈에 도착한 것은 거사 하루전인 10월25일 밤 9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이토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하얼빈에서 회동한다는 기사가 났기 때문이었다.

이토히로부미는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게 됐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속된말로 간덩이가 부을대로 부어 있었다.

이때 이토히로부미는 추밀원 의장직을 맡고 있었다.

安의사는 거사 결행을 위해 신뢰하는 동지인 우덕순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로 하얼빈을 향했다.

안의사는 도중에 통역담당을 맡은 유동하를 태운 뒤 하얼빈에 도착, 유씨의 인척인 김성백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

安의사는 동지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독거사를 결심하고 일본인 신문기자처럼 외투에 털모자를 쓴채 하얼빈 역으로 나갔다.

플랫폼엔 회동 당사자인 코코프체프 러시아 재무대신을 비롯, 러시아 관원들, 각국 외교관, 일본 관민들이 나와 있었고 옆에는 러시아군 의장대가 도열하고 있었다.

숨막히는 긴장감속에 일본인 환영객 속에 끼어든 安의사는 마침내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며 요란스런 경적음과 함께 역내로 들어오는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기차는 플랫폼에 멈춰섰고 코코프체프 재무대신이 이토히로부미가 탑승한 것으로 추측되는 귀빈칸으로 들어갔다.

20여분쯤 지났을까.

재무대신의 뒤를 따라 이토히로부미와 수행비서들이 천천히 열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하얼빈 일본총영사 「무라카미」가 일행을 인도하고 이토히로부미는 러시아 군악대가 연주하는 가운데 의장대를 사열했다.

이토히로부미가 환영나온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사이 安의사는 러시아 의장대 곁을 돌아 흰수염에 키가 작은 노구곁으로 접근했다.

安의사는 미리 준비한 7연발 브로닝 권총을 두손으로 잡은 채 4미터가 안돼는 거리까지 다가가 너무나도 침착하게 적의 심장부를 겨눴다.

일순, 연달아 세발의 총성이 대륙의 찬기운을 가르며 역사를 진동했다.

총탄세례를 받은 이토히로부미가 비틀거리는 사이 安의사는 뒤를 따르던 수행원을 향해 다시 세발을 쏜 다음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코리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라고 목놓아 외쳤다.

安의사가 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