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에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지금까지 잘 쌓아온 경상수지 흑자기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느꼈듯이 선진화된 제도 및 기술과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을 배우고 익히지 않고서는 경제든 스포츠든 세계 강국에 들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제적 감각과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해외여행은 필요하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최근 경기회복 기대감에 편승, 해외여행으로 빠져나가는 외화가 빠른 속도로 늘면서 외환위기 이후 지켜온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표를 보면 올 상반기중 여행수지 적자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1억1천230만달러)에 비해 무려 15배나 늘어난 16억3천880만달러로 이는 지난 80년 이후 최대규모에 해당한다.

다행히 상품수지 호조(77억530만달러 흑자)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35억7천10만달러) 기조를 지탱하고는 있으나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하반기 이후 여행수지 악화가 더욱 심화돼 내년에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행수지 악화의 주된 원인은 우선 내·외국인 여행객 수의 역조(逆調) 현상이 심화된 데서 찾을 수 있다.

법무부의 출입국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외국인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감소(-4.4%)한 반면 우리 국민의 해외출국은 증가(17.2%)한 것으로 나타났고 하반기 이후 더욱 확대될 소지가 크다.

이와 함께 개인들의 해외 씀씀이가 줄지않고 있는 것도 여행수지 악화원인 중 하나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여행온 외국인 1인당 사용경비(월평균)는 98년의 1천629달러에서 올 상반기 1천107달러로 크게 줄어든 반면 우리국민 1인당 해외여행경비는 같은 기간 중 1천131달러에서 1천178달러로 높아졌다.

아울러 우리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과잉 교육열기도 여행수지 악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외국대학에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수가 작년 8월말에 15만명에 이르러 외환위기 직전수준(97년 13만명)을 넘어선 반면 국내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13분의1수준인 1만2천명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조기교육 붐이 거세게 일면서 유학생의 연령도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치원생이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초(超) 조기유학 바람마저 불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선진국이라 하여 반드시 여행수지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의 상품수지 적자를 여행수지 흑자로 어느 정도 보전하는 미국이나 여행수지 흑자가 경상수지 흑자규모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수지개선을 주도하는 프랑스의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국, 독일처럼 만성적인 여행수지 적자를 보이는 나라도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상품교역의 대외의존도가 높아 대외여건 변화에 따라서 상품수지 흑자기조가 쉽게 무너질 수 있는데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특허권사용료 등 기타서비스수지 흑자로 상품수지 부진을 보전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행수지 개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경제 4강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해외 씀씀이가 급속히 늘어나 여행수지와 경상수지가 나빠지다가 급기야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던 지난날의 경험을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출이나 기술 경쟁력 못지 않게 관광·여행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무분별한 해외관광이나 유학을 자제하는 등 건전한 해외여행 풍토를 조성하는 한편 교육환경과 레포츠시설의 선진화로 늘어나고 있는 유학·연수 및 골프·레저수요를 국내에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 및 문화적 특성을 살린 경쟁력있는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음식·숙박시설 등 관광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컨벤션산업과 같은 국제비즈니스산업을 적극 유치하는 데도 힘써야 할 것이다. <정경석 (한국은행 경기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