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두발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근대사 중 갑오경장과 을미개혁은 국가가 나서 적극적으로 개혁을 주도했는데, 가장 힘든 부분이 단발령 시행이다. 고종자신이 상투를 자르고 단정한 조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국에 게시하고 국민들도 이에 따라 주기를 바라는 조서를 내렸으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당시 사람들의 머리에 대한 애정은 소학에 기재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가 준 것이니 이를 훼손하는 것은 불효'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여하튼 1895년에 내려진 단발령이 2000년 10월 중등학교 학생두발 자유화로 긴 역사가 마감된 셈이다.
 학생들의 두발에 대한 관심은 실로 대단하다. 어른들이 증권이나 부동산 등에 갖는 관심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을 일시에 풀어주는 것은 어느 면에서 잘된 일이다. 교사와 학생들과의 간격이 벌어지는 요인 중에 두발 시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히 두발자유화가 이뤄지고 교사는 오직 교과 지도에 매진해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교사의 임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활지도와 인성지도도 포함되는 까닭에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교육의 주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지하게 토의하고 자유화로 나타날 수 있는 제반 문제점을 세밀히 분석, 사회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전 정지작업이 이뤄진 후 두발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성급히 두발자유화를 추진하는 바람에 중등교사들은 종전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가시밭길 골고다의 언덕을 20만명의 학생들에게 돌팔매와 야유를 받으며 올라 갈 수밖에 없게 됐다. 학생들의 구호는 이렇다. 하늘같은 교육부장관이 지시한건데 교사 당신들이 뭔데 두발길이와 염색을 못하게 하는가? 발표한지 며칠이 되지 않아 학생들의 머리모양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는 교육을 직접 책임지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결여되고 극소수 관료들의 의견이 정책에 크게 반영된 결과다. 특히 교육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교사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각 학교별로 규칙을 정해 교육에 지장이 없도록 하라는 세부시행 지침을 내려보냈는데, 이는 실로 책임회피의 발상이고 이 나라 교육정책이 확실한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반증이다.
 지금 준비안된 두발자유화 강행은 청소년 범죄를 양산하고 청소년들의 순결성에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기도 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부가 서둘러 두발제한을 서두를지 모를 일이다. 우리 교육계는 정말 위기 상황에 있다. 교실은 무너지고 각종 개혁정책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교육부는 교복자율화를 추진했다가 3, 4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환원했던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보다 책임있는 자세로 두발자유화 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김기권(오남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