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내에서 '선비'로 통하던 장춘 중부지방국세청장이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
“글쎄요. 묘한 기분입니다. 30년을 넘게 몸담았던 국세청을 떠나려하니 솔직히 아쉽군요. 하지만 큰 탈없이 공직을 완수하고 떠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장 청장은 행시 12회다. 참여정부의 국세청장 물망에 오르내렸던 장 청장은 행시 14회인 이용섭 관세청장이 국세청장으로 내정되면서 30여년간 몸담았던 직장에 후진양성을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은 그의 퇴임을 보는 주변의 시각은 대체로 아쉬움 그 자체다.
“대세의 흐름 아닌가요. 참여정부가 출범했고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는 것도 의미있는 일 아닙니까? 모든 정부 부처가 심각한 인사적체를 겪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세청도 예외는 아니지요. 이젠 신사고로 가득 찬 인물들이 국세청을 이끌어 나가야겠지요. 국민이 국세청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납세자를 위한 투명한 세정을 펼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장 청장은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행시에 합격해 국세청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리세무서장, 서울청·국세청 부가세과장, 서울청 간세국장, 국세청 간세국장, 개인납세국장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장 청장에게 가장 의미있는 일은 99년 국세행정개혁기획단장을 맡아 추진한 '세정개혁'이다.
99년 국세청이 '제2의 개청'을 선언하고 세정개혁에 착수한다고 나섰을 때 이 개혁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은 납세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세무서'하면 떠오르는 미묘한 느낌 때문에 국세청의 변화를 시답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국세청의 변화는 한마디로 놀랍기 그지없다. 지역담당제가 폐지되고 납세자보호담당관제가 신설됐으며 조직축소 등 나름대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이제 국세청은 정부기관중 가장 청정한 기관으로 바뀌었다. 국세청이 추구하는 '세계 1류 선진행정'에 성큼 다가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장 청장이 서 있었다.
“99년 '세정개혁'은 국세청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전환시킨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내부에서도 반발이 많았지요. 하지만 개혁없이는 납세자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서 납세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지요. 물론 완전한 시스템이라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미비한 점은 남아있는 후배들이 점차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장 청장은 미 남가주대학과 서울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동국대에서 행정학박사를 취득한 이력에 나타나듯 학구적인 세무행정가로도 유명하다. 중부청장직을 수행하면서도 모교인 성대 법대에서 조세법을 강의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투명해지기 위해 국세청의 존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기업은 물론이고 공공부문에 이르기까지 국세청이 미치는 범위는 아주 넓지요. 다양한 프로그램과 제도만 더 보완할 수 있다면 국세청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욱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이제 남아있는 후배들이 해야합니다.”
장 청장은 4일 퇴임식을 갖는다.
4일 퇴임하는 장춘 중부지방국세청장
입력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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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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