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미사로 쓰이는 용어 중에 '署'와 '所'가 있다.

'서'는 '일을 분배·분담하다 또는 사무를 취급하다'로, '소'는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설치한 장소'의 의미를 갖는데 주로 관제용어에 붙여 쓰인다.

경찰서·소방서·세무서 등과 사무소·사업소·관리소·연구소·출장소·파출소·검사소 등으로 사용되는 외에 일본에서는 노동기준감독서·해상보안서·세관지서 등과 공공직업안정소·검역소·분석소·관측소·훈련소·요양소·연수소·지소 등으로 쓰인다.

이들 용어는 물론이고 우리의 법·제도를 일본에 의존하다보니 법령용어는 그대부분이, 그리고 공무원의 관리관·이사관·서기관·사무관·주사·서기 등 계급 명칭에도 장관·차관·국장·과장·서장·소장·계장 등의 직위 명칭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

갑오개혁을 구실삼아 개혁파들이 마구잡이로 일본제도를 도입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지금 사용되는 관제용어는 이제 일본의 관제와 비교할 가치조차 없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그동안 우리 법·제도의 발전이 있어왔다고 한들 결국 일본의 법·제도를 계승한 형국에 지나지 않아 씁쓸하다.

인접국가간에는 닮은 문화가 상존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까이 있다는 지역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가 어떻게 붙든 '소'가 붙든 혹은 공무원의 명칭이 어떻게 불리든지 생활 속에서 별 불편이 없기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져 있지만 극복되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 후에 정비한 근대식 관제가 1945년 패망까지 지속됐지만 이후 미군정에 의해 공무원제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즉, 관서의 '서'의 용어사용은 근대관제가 시작되면서부터, '소'의 도입은 미군정이 실시되어 국가행정조직법을 제정한 이후로 알려지는데 이는 일본관제 변화의 한 단면이다.

현재 일본은 '수사·조사 등 주로 단속업무를 하는 기관'에 '서'를, '대국민 서비스를 업무로 하는 기관'에 '소'를 붙여서 양자를 구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단속업무를 하는 경우라도 지방노동사무소·국유림사무소·수산물검사소 등과 경찰서·소방서·세무서 등으로 양자가 구별되나 그 기준이 명확치 않다.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해체결정과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는 등 일제 잔재청산을 부르짖던 시점인 1995년 12월19일에는 산림청 소속 '영림서'명칭이 '지방산림관리청'으로 되었다.

이처럼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든가 오늘날 규제행정보다 서비스행정이 강조되는 측면에서는 '소'를 붙인 편이 합당한 듯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사정만으로 경찰서·소방서·세무서 등의 용어를 경찰소·소방소·세무소(?) 등으로 바꾼다고 가정해보자.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혹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혼란을 이유로 삼는 반대도 만만치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수많은 일본식 관제가 여과없이 쓰이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에 대해 말하려 들지도 않고 모두들 무의식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다.

일본에서 나와 함께 유학하면서 상법을 전공하던 한 학생은 한·일의 상법제도를 비교하는 논문발표 시간에 지도교수로부터 한국법제가 일본법제와 다른 점이 뭐냐는 질문에 특별한 차이가 없다고 대답하고서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던 말이 생각난다.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 건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도 어느덧 여유란 걸 가지게 되었으니 고유한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데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 길들여진 것이 커다란 장애일 수 있다.

고대의 관제사 연구를 통한 우수한 관제의 발굴과 제도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군주독재 시대가 아니므로 정승·판서와 같은 관직명을 계승한다 하여 터무니 없다고 하랴. 이·호·예·병·형·공부 등의 옛 관제를 쓴다하여 과거로의 회귀라며 빈정거릴 일이겠는가.

국제 음식시장에서 우리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와 경쟁하여 우수성을 인정받듯이 우리식으로 창조하는 것에서 타국과의 차이를 말할 수 있다./이재학(노동부 군포고용안정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