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북문 밖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하남시 중심을 꿰뚫고 이내 한강으로 흘러 든다. 이름하여 덕풍천(德豊川)이라고 하는데 이성산성에서 내려온 물과 객산(客山)에서 내려온 물까지 더해져 제법 굵은 흐름을 보인다.
이 덕풍천을 한강에서 바라보면 지류들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뻗어 있는데, 그 가지가지마다 유적이 달려 있어 그야말로 '문화유산나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나무' 끝에 남한산성이며 이성산성, 교산동 토성까지 5리 남짓 거리를 두고 있으니 더욱 우람한 나무가 된다.
오른쪽 가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올려다보면 약정사터, 자화사터, 향동사터가 금암산을 에워싸고 있어 예사롭지 않다. 이곳은 남한산성 서문을 나와 연주봉 옹성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한식경도 안되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또한 오른쪽 가지의 중심인 고골저수지 옆 야산에 동사(桐寺)터가 있다. 동사(同寺), 신유 광주동사(辛酉 廣州桐寺), 흥국3년(興國三年)등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로 인해 고려초기 광종대(949~975)에서 경종대(975~981)에 이르는 시기에 창건되었거나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이 동사터에서 향동사터나 자화사터 또한 한식경이면 닿을 수 있고 너븐바위, 곧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광암터널 바로 위에 있는 광암동 고인돌, 춘궁동 마애불과 개두사 터, 이성산성이 고만고만한 거리를 두고 늘어섰다. 그 뿐인가. 동사터 아래 궁안마을은 오래 전부터 궁터라고 알려져 왔으며 여러 유물이 수집되기도 하였다.
이성산성 입구를 지나 처음 만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 아래로 고골저수지가 나타난다. 오뉴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과 바로 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이 이렇게 대비될 수 있는가 싶다.
고속도로 때문에 옛길은 굴길이 되어 음산한 분위기마저 감도는데 비닐하우스 사이에 동사터가 숨어 있다. 아니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에게 모습을 보이기 싫은 듯 탑 둘이 서 있다. 그것도 아주 특이하게 3층 석탑과 5층 석탑으로 섰다.
이성산성 성벽을 구성한 돌들은 동글동글 냇돌같이 느껴지게끔 다듬어서 시대를 초월해 백제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리에,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하지 않는다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한 백제문화의 정수를 기대하고 동사터에 이르른 터였다.
그러나 삼층석탑과 오층석탑을 보는 순간 통일신라문화의 느낌과 고구려 문화의 느낌만 강하게 밀려올 뿐 백제문화의 느낌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의 화려한 세부치장에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느끼게 하여 전체적으로는 고구려 쪽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왜 고구려 문화가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에 녹아들었을까?
금당터로 여겨지는 곳 중앙에는 본존불이 앉았을 팔각형의 대좌받침이 있다. 직경이 5.1m나 되어 당대 최대 규모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약 3m인 석굴암 본존불 대좌의 크기와 비교할 만하다. 금당의 크기 또한 대단하여 황룡사 금당에 버금갈 만하니 놀라울 뿐이다.
덕풍천을 나무에 비유했을 때 왼쪽 가지에 해당하는 부분 또한 만만치 않다. 법화사터며 천왕사터, 하사창동 철불대좌와 태평2년명 마애약사여래좌상, 교산동 건물터 등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이 주변은 흙조차 유물이 아닐는지.
국립중앙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철조석가여래좌상(일명 광주철불)은 이 곳 하사창동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불상은 지금 남아 있는 고려시대 철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약 2.8m)으로 유명한데,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정교한 솜씨와 균형 감각도 돋보인다.
지금은 석조대좌의 일부만 남아 있어 폐사지의 쓸쓸함을 더해주지만 미술사가들은 토함산 석굴암 본존불의 형식이 재현된 것이라고 한다. 곧 고려초기 문화를 담당하였던 계층이 신라계였고, 신라의 귀족문화가 새 왕도인 경기지역에 접목된 증거이며, 경주지역의 불상조각가 등 문화집단이 경기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부처골이라는 이름 또한 철불 때문에 생겼을 터인데 철불 2구가 동서로 남향하여 놓여 있었다고 하니 절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또 한 철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부처골 옆 선법사 골짜기로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대개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간혹 걸어오는 사람도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물통을 들었다는 데 있다. 교산동 약사여래좌상 왼쪽으로는 작은 폭포가 있고 폭포 옆 고목 뿌리를 타고 약수가 흐른다. 마애불은 왼손으로 약합을 받쳐들고 있어 약사여래좌상일 것이고 중생들의 아픔을 치유할 요량으로 약합을 들고 있으니 그 안에는 묘약이 들어 있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부처의 마음보다 다급한 법, 고목 뿌리를 타고 흐르는 맑
하남(2)-한강지류 덕풍천은 '문화유적 나무'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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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0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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