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단기완성 한국주재 외국인 대환영'.

지난 16일 오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젊은이들이 많이 붐비는 지하철역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유명 영어학원 광고간판 대신 그 자리를 한국어 학원 간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영어로만 돼있는 광고간판 문구들도 눈길을 끈다. 지하철역 1번 출구로 나가자 흡사 미국의 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낯선 거리 풍경에 잠시 넋을 잃는다.

하루 외국인 유동인구 2만여명, 외국인 상대 전문 쇼핑점포 1천500여 개, 통용되는 언어만 5개국어, 한국 속의 작은 외국이라 불리는 이태원의 현주소다. 평일 오후시간인데도 1번 출구 앞 해밀턴 호텔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늘어선 상점들에는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영어 못하면 여기서 장사할 생각 말아야지. 벙어리가 장사할 수 있겠어?"

횡단보도 앞 자판에서 껌 하나를 사며 슬쩍 영어에 대해 물어보자 60대가 넘어 보이는 주인은 황당하다는 듯 기자를 쳐다본다.

이내 그는 "This One is thirteen dollars 싸다 싸" 영어와 한국어를 뒤섞어 말하며 외국인들과 눈빛을 마주친다.

관공서에서 내건 듯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2007'이라고 쓰여진 현수막도 이색적이다. 영어와 한글을 똑같은 크기로 혼용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옆에 있는 용산경찰서 이태원 지구대에도 'May I Help You'라는 입간판이 붙어있다.

▲ 하루 외국인 유동인구 2만여명, 외국인 상대 전문 쇼핑점포 1천500여개, 통용되는 언어만 5개국어, 한국속의 작은 외국이라 불리는 서울 이태원 거리. /김명호기자·boq79@kyeongin.com

영어가 한글아래 보일듯 말듯 겉치레로 표기돼 있는 인천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이태원 주변에는 편의점과 상점 등 우리가 흔히 이용하고 생활하는 곳곳마다 영어가 모국어처럼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갔던 패스트푸드점도 마찬가지. 영어로만 표기된 환율 안내판이 벽면에 붙어있고 각종 햄버거 메뉴가 영어로 돼 있다. 이곳에서 4개월 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대학생 김선영(22·여)씨는 집과 많이 떨어져 있지만 일부러 이태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해외 어학연수 갈 여건이 안돼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이곳에는 하루 수십명의 외국인들이 찾아와요. 이들을 상대로 주문받으며 얘기하고 길에서 외국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수 있죠."

젊은이들이 영어를 배우러 이태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낯선 두려움을 금방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에서 30년째 모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승모(57)씨는 "이곳에서 장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지만 영어 말하기 만큼은 일류대학 나온 사람 못지않다"며 "어린시절부터 미군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기 위해 어법에도 맞지 않는 영어를 중얼거렸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태원관광특구 연합회 민경국 회장은 "이태원의 경우 단지 외국인들에게 물건을 팔기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기 보다는 언어와 문화 자체가 외국인들을 도시속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지금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