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들이 쉴 곳이 없다는 요즘 이들에게 특별한 공간이 하나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노래는 물론이고 영화도 함께 보며 게임도 할 수 있는 곳. 이 모든 것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이른바 '멀티방'이라는 신종 놀이공간이 도심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멀티방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자신들만의 안락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용 가격도 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간당 5천~8천원이면 친구들과 신나게 즐길 수 있다. 더욱이 출입연령 또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멀티방은 10대들에게 인기 최고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멀티방이 이들의 만남의 장소,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 장소로 각광받는 반면, 밀폐된 환경속에 자칫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원스톱 문화공간?
경기도의 한 유흥가 밀집지역에 위치한 A멀티방.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칸막이로 나뉘어진 십여개의 멀티방들이 늘어서 있다.
종업원의 안내로 한 방에 들어서자 약 13㎡ 정도 규모인 멀티방 벽면에는 대형 벽걸이 TV가 놓여져 있었고 그 주위로 홈시어터와 컴퓨터, 노래방 기기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어두컴컴했던 노래방이나 DVD방 보다는 쾌적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키보드와 마우스가 놓여 있는 탁자를 보면 PC방 같은 분위기를 보였다. 언뜻 보기엔 일반 노래방 같기도 하고 DVD방과 PC방 같기도 한 이곳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멀티방'으로 불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성인 몇명이 충분히 기대어 누울 수 있는 침대같은 푹신한 소파가 있어 집안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모든 것을 시간당 5천원에 즐길 수 있는 멀티방은 최근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칸막이로 나뉘어진 밀폐된 방 곳곳에는 어린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가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유리창이 모두 가려져 있어 이들의 모습을 직접 보기는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방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학생 서너명이 밖으로 나와 이들의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침대같이 생긴 소파는 제자리를 잃은채 흐트러져 있었고 , 재떨이는 담배꽁초가 한 가득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이들이 마시고 버린 빈 맥주캔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었다.
▲청소년이 말하는 멀티방

남자친구와 종종 멀티방을 찾는다는 C(17)양은 "이용료도 저렴하고 일단 방에 들어오면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맘대로 즐길 수 있다"며 "주말이면 이곳에 와 데이트(?)를 즐긴다"고 말했다.
C양은 또 "멀티방에 올 때는 술과 담배를 사가지고 오는데, 교복을 입고 들어와도 아무런 제지가 없다"며 "마음껏 놀기 좋아 친구들 여럿이 함께와 이곳에서 생일파티를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멀티방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청소년들만의 공간으로 자리잡아 그 인기가 상승하고 있지만 청소년의 탈선 장소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노래방으로 착각하고 멀티방에 들어가봤다는 양모(34)씨는 "청소년들이 교복을 입은채 입에 담배를 물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규제가 없어 문제
멀티방은 어떤 업종으로 등록해야 할까.
수원시청 관계자는 "멀티방은 복합유통게임제공업으로 등록이 가능하다"며 "설치된 기기에 청소년이용불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며, 외부에서 실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청소년 이용시설에 해당돼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멀티방 업주 관계자는 "솔직히 청소년의 흡연과 음주에 대해서 제한을 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업소에서 담배와 술을 팔지는 않지만 청소년들이 반입한 것에 대해서는 모른척 한다"고 밝혔다.
업주는 또 "요즘은 서울 대학가를 중심으로 아예 침대와 샤워시설까지 갖춘 모텔같은 영업을 하고 있는 멀티방도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는 칸막이로 막아놓은 '방'문화에 익숙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휴게방' 등 온통 '방' 투성이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은 "'방'문화 발달은 점점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 속에서 타인을 의식할 필요없는 나만의 은밀하고 단순한 공간을 찾고 싶어하는 욕구가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기성세대에 비해 '나 '자신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높아 인터넷의 발달과 핵가족화로 인해 대중 속에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원하는 것이다.
많은 교육관계자들은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아실현을 할만한 장소가 없다"며 "청소년 해방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놀이와 장소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멀티방은 분명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방치하는데서 시작된 '그들만의 공간'이다.
건전하고 활기찬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멀티방으로부터 청소년을 해방시켜주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