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은 사회정의를 세우는 기준이다. 선한 일은 장려하며 악한 일은 징계하고, 선한 사람은 상을 주고 악한 사람은 벌을 주어야 정의가 서고 그래야 사회가 말썽없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선악의 가치가 명쾌하고 선명하게 드러난 사회, 이상향은 없지 싶다. 대개 선악의 가치가 전복되고 왜곡됨으로써 억울한 사람이 생기고 악당이 득세하는 양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바, 세상사람들이 요순이라는 신화의 시대를 그리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선악의 가치가 뒤엉키는 이유는 권력 때문이다. 조선 정조 때의 불우한 양반인 심익운은 '대소설(大小說)'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이처럼 가치전도된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크게 사악한 자는 그 악이 크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사악함이 작은 자가 도리어 죽음을 당한다. 반면 크게 선한 자는 소문이 나지 않고 작게 선한 자는 소문이 난다. 크게 충성스러운 자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작게 충성스러운 자가 보상을 받으며, 큰 현자는 기용되지 못하고 작은 현자는 기용된다. 이것이 선과 악, 크고 작은 것의 행불행이 아니겠는가?"

선악 전도현상이 작금이라고 다를리 없다. 유전이고 유권이면 무죄요, 무전이고 무권이면 유죄라는 통념이 여전하니 그렇다. 당선은 무죄요 낙선은 유죄라는 정치판의 금언 또한 아직까지 빈 말이 아니다. 요약하면 대마불사라 하겠다. 대마를 죽이자니 독깨는 일이요, 초가삼간 태우는 꼴 날까 할 수 없이 참고 넘어간다는 것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대기업이 그렇고 정치권력의 핵심이 그렇다. 이쯤되니 '이왕 될거면 큰 도둑이 되고, 해 먹을거면 크게 해먹으라'는 도둑의 처세가 그럴듯 해보인다.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방법과 수단이 다를 뿐 세금을 축내고, 국고를 갈라먹는 도적질의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국감 20여년 동안 한결같다. 이처럼 지루한 반복이 이제 지겹다. 이 모두가 힘가진 큰 도둑과 대마를 방치한 탓이 아닌가.

윤인수 (경인플러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