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4년제 대학 27개, 2년제 대학 33개', '인천지역 4년제 대학 5개, 2년제 대학 4개'.
경인지역은 인구와 산업규모 못지 않게 각종 대학교육 기관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70여개 2·4년제 대학이 있고, 서울권 대학 캠퍼스와 특수목적대까지 포함하면 80~90여개 대학이 지역에서 국가 및 지역사회 리더들을 양성 중이다. 재학생 규모만 100만명, 관련 종사자와 상업시설까지 감안할 경우 지역대학으로 먹고 사는 사람만 수백만명에 이르는 셈이다.
하지만 지역 대학들의 경쟁력은 과연 어떨까. 한국 사회, 특히 대학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경인지역 우수 학생들이 지역 대학에 진학할 만한 메리트는 있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샌드위치'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권의 소위 '명문'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들, 6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지방 사립대들 사이에서 지역 대학들은 저력을 발휘하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활로를 모색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서울이나 전통 지방대학들과 똑같은 백화점식 학과 운영, 교육 커리큘럼으론 절대 우위를 점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즉, 특성화된 지역 대학만의 색깔을 찾으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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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지표, 지방 사립대에도 밀린다
실제로, 각종 대학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경인지역 대학들의 실상은 그리 밝지 않다. 일례로,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유정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DB) 자료(2008년 8월말 기준)의 '출신대학별 등록현황(상위 20개)'에는 지역 대학들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재 DB'에는 공무원을 비롯해 경제인·교육인·법조인·언론인·학술인·공공기관 임직원·의료인·정치인·전문직업인·시민단체·금융인·문화예술인 등 공공 및 민간부문 리더들이 대부분 등록돼 있다.
이 DB상에서 서울대가 2만5천953명으로 압도적 수위를 기록한 가운데 경북대(3천377명·7위), 부산대(3천292명·8위)와 같은 지방 거점 국립대는 물론 영남대(2천378명·12위), 동아대(1천777명·18위) 등 지방 사립대들도 '예비' 국가 고위 공무원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 대학들이 서울권 대학들과 지방 거점 국·사립대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가지표와 방법, 기준 등에서 논란을 빚긴 했지만 각 언론사가 공표한 '대학평가'에서도 지역 대학들은 '서울-지방' 양 권역 주요 대학들에 크게 밀리고 있다. 지난 5월 조선일보 '2009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150위권 대학에 이름을 올린 지역 대학은 인하대(92위), 아주대(98위), 가톨릭대(101위), 단국대(139위) 단 4개 대학에 불과했다. 당시 서울대(8위), 연세대(25위) 등 서울권 대학과 부산대(58위), 경북대(82위) 등 지방 거점 국립대, 한림대(103위), 울산대(104위)와 같은 지방 사립대 모두 골고루 선전, 교육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지난해 9월 '2008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평가 종합순위 30개 랭킹 대학 중 지역 대학은 인하대(11위), 아주대(15위), 가톨릭대(19위) 3개 대학 뿐이었다. KAIST와 포스텍을 제외한 서울권 대학들이 10위권을 휩쓴 가운데 부산대(13위), 경북대(17위)는 물론 한동대(21위), 울산대(22위) 등 지방 국·사립대들도 12개 대학이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 지역 대학들과 대조를 보였다.
도내 한 사립대 교수는 "매년 그 순위의 틀이 공고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신뢰성이 확보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때문에 입시학원에서도 진학지도의 주요 자료로 활용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서울권이나 지방 유명 국·사립대가 주는 메리트를 지역 대학들은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졸업생 사회 인프라 구축도 부진
대학교육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졸업생들의 각종 사회 진출 현황과 주요 시험 합격인원 배출 실적에서도 지역 대학들의 부실평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교육의 최고 가치는 취업 실적이 아니다'란 비판도 제기되지만 이들 졸업생이 국가와 지역사회를 이끄는 주요 축으로 등장하고, 수험생 및 재학생들도 이들을 준거로 삼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학들의 부진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16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발표한 '2009년 코스피 상장사 임원 출신 대학 현황'의 경우 상위 20개 대학 중 경인지역 대학은 인하대(8위)와 단국대(19위)만 포함됐다. 서울대가 코스피 상장사 임원 1만2천16명 중 무려 17.5%인 2천98명을 점했고, 이어 부산대(6위), 영남대(7위) 등 6개 지방 국·사립대가 대거 포진한 가운데 인하대는 347명(2.9%)을, 단국대는 120명(1%)을 배출했다.
한국기술사회 기술사인력 DB 현황에서도 공과계열이 강하다는 지역 대학들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기술사회에 따르면 8월15일 현재 두 자릿수 이상의 기술사를 배출한 지역대학은 경기대(16명), 경원대(11명), 단국대(20명), 명지대(28명), 성균관대(자연·25명), 수원대(12명), 아주대(20명), 인하대(71명) 8개 대학이었다. 한양대(220명), 연세대(86명) 등은 물론 영남대(72명), 부산대(51명) 등에도 대부분 밀리는 수치다.
지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임원 배출 실적에서도 공대가 강세인 일부 지역 대학만 명함을 내미는 형편이다. 지난 2006년을 기준으로 삼성전자 임원을 10명 이상 배출한 대학은 경북대(63명)와 성균관대(58명) 등 전국 19개 대학으로, 이 가운데 경인지역 대학은 인하대(24명), 아주대(17명) 2개 대학에 그쳤다. 같은 해 삼성경제연구소 100여명 임원 중에서는 인하대(1명) 외엔 지역 대학 출신이 전무했다.
인문사회계열로 넘어가면 사정은 더욱 심각해진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김희철(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현 정부 출범 이후 고위 공무원단 인원 증감 현황'에 따르면 '3급 이상 고위공직자 배출 상위 15대 대학'에 지역대학은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서울대(449명·1위), 고려대(140명·2위) 등 서울권과 경북대(40명·9위), 영남대(35명·10위) 등 지방 4개 국·사립대는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각종 시험 합격 현황도 부진하다. 지역 대다수 대학이 개설한 경상계열의 주요 지표인 공인회계사(CPA)의 경우 2004~2008년 CPA 합격자 배출 상위 20개 대학엔 아주대(74명)와 인하대(56명) 뿐으로, 연세대(773명), 고려대(707명)는 물론 부산대(155명), 경북대(87명)에도 뒤진다. 2003~2007년 5년간 사법시험 합격자 20명 이상 배출 대학에서도 아주대만 22명으로 전국 18위권에 올랐다. 아주대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1명이 합격, 전국 17위권을 유지했지만 여전히 부산대(22명), 전남대(19명) 등 지방 국립대엔 밀렸다. 이 밖에 지난해 행정고시에서도 1명 이상 합격자를 낸 지역 대학은 아주대·인하대(각 1명) 2개 대학 뿐이었으며, 외무고시에서는 합격자가 아예 없었다.
■ 특성화만이 답
전통적 의미의 학문만을 수십년간 고집해 온 지역 대학들이 결국 인구와 산업 등 수도권이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게 된 현실 속에서 전문가들은 '특성화' 외엔 별다른 대학 경쟁력 확보 방안을 도출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권이나 지방 유수 대학들과 똑같은 과정의 경영학과를 운영할 경우 학생들은 늘 수도권 대학 경영학과를 후순위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재삼 연구원은 "지역 주력 산업특성을 충분히 활용해 조선해양공학과나 자동차공학과를 일찌감치 개설해 온 일부 지방 사립대의 경우 '타지 대학에 가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했다"면서 "지역 대학에 진학하고 교육받아야만 고유한 기술·지식을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특성화' 경쟁력을 저변에 뿌리내리는 길이 후발 대학들의 생존 전략이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