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인(茶人)들이 한재 이목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차의 5공/6덕(五功/六德)을 언급한 '다부(茶賦)'에 있다. '다부'는 그의 나이 24세때 연경 유학시절 체험한 차 생활을 토대로 차의 심오한 경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草衣(意恂·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1837)'보다 340년 앞섰다. 분량 면으로도 약 2배가량 많으며 특히 차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 수양과 정신적 즐거움을 강조했다.
'다부'의 '범인지어물(凡人之於物)'로 시작되는 머리말에는 "차를 일생동안 즐겨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그 고유의 성품 때문이다. 곧 달에는 이태백이요, 술에는 유백륜이라 하거늘, 그 좋아하는 바가 비록 달라도 즐김에 이르면 한가지라…"하며 '다부'를 짓게 된 동기와 배경을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적었다. 이어 '기사왈(其辭曰)'로 시작되는 몸말에는 '차 이름과 산지' '차 나무의 생육 환경과 예찬' '차 달여 마시기' '일곱 잔의 차 효능' '차의 다섯가지 공로' '차의 여섯가지 덕' 등을 열거하고 있다.
차의 다섯가지 공로(功效)는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고, 마른 창자와 가슴의 울적함을 풀어주고, 주객의 정을 서로 즐기게 하고, 뱃속의 중독에 대한 해독으로 소화를 잘되게 하고, 술을 깨게 해독해 준다고 했다. 차의 여섯가지 덕성(德性)은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 살게 하고, 덕을 닦게 하며, 병을 그치게 하고, 기운을 맑게 하고, 마음을 편케 하고, 신령(仙人)스럽게 하고, 예의롭게 한다고 적었다.
또한 차는 등급이 있어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상품이요, 지병을 없애주는 것이 중품이며, 고민을 달래주는 것이 그 다음 차품(次品)이라 했고, 차의 일곱가지 효능을 칠단계 수신구도(七段階 修身求道)로써 한 잔을 마시니 메마른 창자가 눈 녹인 물로 씻어낸 듯하고, 두 잔을 마시니 마음과 혼이 신선이 된 듯하고, 석 잔을 마시니 두통이 없어지며 호연지기가 생겨나고, 넉 잔을 마시니 기운이 생기며 근심과 울분이 없어지고, 다섯 잔을 마시니 색마가 도망가고 탐욕이 사라지며, 여섯 잔을 마시니 세상의 모든 것이 거적때기에 불과해 하늘나라에 오르는 듯하고, 일곱 잔은 절반도 마시기 전에 맑은 바람이 옷깃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품(三品)/칠효능(七效能)/오공(五功)/육덕(六德)의 '다부'는 문체상으로 보면 문학 작품임에 분명하나, 내용상으로는 사상적, 철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어, 한재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차는 물질적인 측면의 맛이나 단순한 표면상의 멋이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차가 아니다. 자연을 벗삼아 얻게 되는 중용 정신과 차의 고결한 자태를 통해 우리의 심신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마음속의 차인 것이다.
한재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넘었다. 나이 14세에 성리학자이며 茶人인 김종직 선생 문하에 들어가 19세에 초시 갑과에 합격하고 25세 장원급제했으나, 1498년 무오사화로 죽음의 길을 태연히 떠난 한재 이목, 그의 '다부' 끝말은 무엇일까? "기꺼이 노래로 이르리라/ 내가 세상에 나오니 풍파가 모질구나/ 양생의 뜻을 좇을진대 너를 버리고 무엇을 구하리오/ 나는 너를 지녀 마시고 너는 나를 따라 사귀느니/ 꽃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에 좋아하리라/ 천군을 모시고 두려움과 경계로 말하리니, 삶은 죽음의 밑이요, 죽음은 삶의 뿌리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