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파른 산 비탈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면 작고 허름한 판잣집이 나온다. 중학생 민석이(가명·15)의 집이다. 아빠의 사업실패로 큰 빚을 지게 되자 오갈 데 없던 엄마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이 곳에 이사를 왔다. 민석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아빠 부도후 산기슭으로 이사
재래식 화장실 전기도 불안정
경찰이 꿈인 15살 사춘기소년
운동 배우고 싶어 투정만 늘어
"경매로 집이 넘어가는 바람에…." 남편과 이혼한 뒤 민석이 형제를 홀로 키우고 있는 김미희(가명·43)씨가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김씨는 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가난만큼은 아이들에게 대물림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친정 엄마는 지금 언덕길 아랫집에 살고 있다.
지난 1일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의 한 산기슭에 있는 민석이네 집을 찾아가 봤다. 차량 내비게이션으로는 위치 검색이 안 되는 곳이다. 민석이 엄마는 인근 시내로 취재진을 마중나왔다.
민석이 집에서는 저 멀리 송도국제도시의 초고층 빌딩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도심 속 외딴 섬'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시멘트 벽돌로 쌓은 '푸세식' 화장실 너머로 송도 시내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옹색한 세간살이로 채워진 주방 겸 거실이 나왔다. 천장 곳곳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
"장마철이면 천장에서 빗물이 샌다"는 김씨는 "아이들이 아토피가 있어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비가 얼마나 많이 오던지, 나무나 흙더미가 집을 덮칠까봐 정말 불안했어요." 누전이나 합선 위험도 커 보였다.
그는 "비가 오면 종종 전기가 나간다"며 "산이라 밤에 전기가 끊기면 암흑으로 변한다"고 했다. 겨울철은 동파 피해로 물이 끊긴다. 물탱크를 갖다놓기 전까지는 한겨울에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친정 엄마네서 물을 길어다 썼다.
요즘 큰아들 민석이는 사춘기다. 말수가 줄었고 이유없이 화를 내는 일도 부쩍 잦아졌다. 특히 집에 대한 불만이 많다. 김씨는 둘째 현석이(가명·13)와 함께 방을 쓴다. 민석이 방은 따로 마련해 줬다. 아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민석이는 알까.
김씨는 "첫째가 '우리는 왜 이런 데서 살아야 하냐'고 자주 투정한다"며 속상해 했다. 민석이는 집에 친구를 한 번도 데려온 적이 없다. 김씨는 "창피해서 친구들을 매번 따돌리고 멀리 돌아 집에 온다"고 했다. 민석이 꿈은 '경찰'이다. 얼마 전에는 유도 학원을 다니게 해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아들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도 못 가져올 때가 많다. 세 식구 생활비를 쓰기에도 빠듯한 돈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주효영 사회복지사는 "어머니가 내색은 안 해도 자신이 어렵게 자란 환경으로 자식들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후원 문의: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천본부 (032)875-7010
/임승재기자
경인일보·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동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