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조차 사라지는 오르막
5월엔 단아한 철쭉꽃 '장관'

못다이룬 연인의 슬픈사랑
아홉마지기에 전해진 전설

부드러운 흙길끝 용추계곡
세찬 물소리가 봄기운 알려

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山無水不秀)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水無山不淸)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曲曲山回轉)
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돈다 (峯峯水抱流)
-주자 무이구곡시


2007년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연인산은 1999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문헌상 월출봉으로 불렸고 인근 주민들은 우목봉이라 부르던 것을 가평군 지명위원회가 지어준 것이다.

봉우리로만 표기되던 것을 이름을 붙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 됐다. 1천m가 넘는 산으로 경기도에 몇 안되는 고봉에 속한다.

전반적으로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가족단위로도 즐겨 찾는 곳이며 간단한 장비로 하룻밤을 보내며 힐링을 하고 가는 등산객들도 자주 찾는다.

국내 잣 생산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가평군에 속해 있어서 산행 중에 솔내음 가득한 숲을 거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철쭉꽃이 장관을 이루는 가평의 연인산은 품이 넓은 산으로 각종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당당하게 높고 넓은 품의 경기 명산

품이 넓고 1천m가 넘는 산이다. 당연히 골도 깊고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정상에 오를 수 있기에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힘든 여정으로 연인 사이가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하여 간혹 '연인깨기산'으로도 불린다.
2시간이 넘는 오르막은 서둘러 가려다가는 쉽게 지치는 요인이 된다. 표고차도 700여m가 넘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오르는 것이 안전산행의 지름길이다.

어느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든 간단치 않은 오르막이 초반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한다. 빼곡한 잣나무 사이로 난 숲길은 오롯이 능선으로 향하고 초반과 달리 둔탁해진 발걸음은 가다 쉬다를 반복해야 능선으로 다가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솔잎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가며 머릿속의 잡념을 재운다.

능선이 가까워 오면서 나타나는 오르막은 오로지 오르는 데만 집중하게한다. 백둔리에서 출발해 두어시간이 지나서야 소망능선에 섰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구간으로 5월이면 단아한 철쭉꽃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갑자기 트인 시야에 다른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다. 온세상을 내려다 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이백의 '산중문답'을 떠올린다.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 그 말에 대답 대신 웃는 심정(問餘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이리도 넉넉하네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 인간세상 아니어라 별유천지네(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때이른 꽃타령이라 타박을 받을지언정 이미 다녀간 옛추억에서 연인산의 꽃향기를 잊을 수 없기에 산을 오르는 내내 줄곧 마음에선 만개한 꽃잎들 사이의 길을 걸었다.

하트문양의 정상석엔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적혀 있는데 별다른 감흥이 없기에 완만한 내리막을 따라 널따란 공터에 내려섰다. '아홉마지기'란 곳으로 옛이야기 한구절이 전해오는데 내용은 이렇다.
옛날 숯을 굽는 청년과 참판댁의 여종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됐다.

결혼을 청한 청년에게 참판은 조 100석을 가져오면 결혼시켜주겠다고 하여 청년은 지금의 연인산 정상 부근의 분지를 발견해 아홉마지기의 밭을 일궈 조 100석을 마련했다.

그러나 참판이 그를 역적의 아들로 몰아 포졸들에게 쫓기게 되었고, 실의에 빠진 청년은 아홉마지기 밭에 불을 질러 죽었다. 처녀도 따라 죽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둘의 신발이 놓여진 자리 주변 철쭉과 얼레지는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무인산장과 샘이 있어서 한겨울 종주꾼들과 비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식처 역할을 해주고 있으나 한여름엔 수풀에 뒤덮여 볼품 없는 곳으로 전락하고 만다.

#높은 산 깊은 골이 만들어낸 용추계곡

가평군 일대 산의 특징이라면 능선마다 방화선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론 잡풀이 온통 뒤덮고 있기도 하고 그 쓰임새가 목적에 부적합하게 관리가 안되는 모습도 종종 보았는데 연인산에서의 방화선은 여유로운 산책로와 같아서 편하게 걷기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잣나무와 신갈나무, 구상나무가 번갈아 만들어 내는 숲길이다. 우정봉을 거쳐 우정고개로 이어지는 우정능선의 부드러운 흙길을 걸으며 6갈래의 우정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용추계곡의 상류로 다가선다. 원시계곡미가 물씬 풍기는 계곡길에 들어서자 주자의 무이구곡시가 떠오른다. 겨우 7.5㎞ 정도의 계곡이렷다.

용추계곡은 그보다 더 긴 10여㎞의 장쾌하고도 멋진 계곡이니 어찌 외면하고 돌아설 수 있을까. 하지만 먼길이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많아 힘든 하산길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계곡의 끝자락에 다다를수록 온 산을 울리는 세찬 물소리에 힘을 얻는다. 목을 축이려 물가로 내려서자 겨울의 시린 기운이 남아 목덜미를 타고 온몸을 휘감는다.

봄을 찾아 떠난 연인산에서 마지막 겨울을 훔쳐보고 돌아서는 길이다.


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