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지역 765㎸ 송전탑 공사가 일주일을 넘긴 가운데 27일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송전탑 85번 공사현장에서 한전이 굴착기에 쇠사슬을 묶고 공사반대 시위를 벌이던 주민들을 제압한 뒤 공사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밀양 송전탑 건설공사가 8개월여 만에 재개돼 1주일을 넘긴 가운데 국회의 중재로 정부·한전과 반대주민이 협상을 시작했지만 주요 쟁점을 놓고 시각차가 여전하다.

여기다 당정이 다음 달 최우선 입법 과제로 추진키로 한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법 제정안을 놓고 기획재정부가 전력산업기금 사용 계획에 반대 견해를 표시, 재원 조달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28일 한전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밀양지역에서 재개된 765㎸ 송전탑 공사는 8일간 모두 9곳에서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한전직원·경찰과 주민이 충돌해 부상자 17명이 속출했다.

굴착기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시위를 하는 등 주민의 반대 양상이 점차 격렬해지는데다 더운 날씨 등으로 탈진해 후송되는 고령자가 잇따라 나오는 등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 22일 당정협의를 시작으로 24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통상에너지소위에서 전문가협의체 구성 등을 논의했으며 29일 다시 소위를 소집해 협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 전문가협의체 '합의됐다' vs '조건 맞아야'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지난주 통상에너지소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정부와 주민, 국회에서 각 3명씩 추천한 전문가들이 최장 45일동안 활동하면서 지중화와 우회 송전 등에 대해 협의해 결론을 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 측에서는 추천할 전문가 윤곽이 이미 정해진 걸로 안다"면서 이번 주중 협의체가 꾸려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온도차가 뚜렷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한다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전제가 필요하다"며 "먼저 조건이 맞아야 협의체가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의 다른 관계자는 "전문가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합의가 이뤄진 것은 없다"고 못박았다.

주민 측은 전문가협의체의 선행 조건으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와 한전은 어렵사리 재개한 공사를 다시 접을 순 없다며 맞서고 있다.

한전은 전문가협의체가 시간만 지연시킬 뿐이라며 미온적인 입장이다. 그동안 간담회 등에서 숱하게 논의된 내용이 다시 다뤄질 뿐 새로운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경남 밀양지역 765㎸ 송전탑 공사가 일주일을 넘긴 가운데 27일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송전탑 85번 공사현장에서 굴착기에 쇠사슬을 묶고 공사반대 시위를 벌이던 한 주민이 한전 직원들에게 제압돼 공사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한전은 주민 부상 등 보호용으로 마련했다는 구조용 들것에 주민들을 싣고 공사장 밖으로 이동시켰다. /연합뉴스

◇ 정부가 보증한다던 입법…재원이 걸림돌

산업부 한진현 2차관은 지난주 당정협의 후 브리핑에서 주민의 직접적인 재산권 피해를 보상하기로 했다면서 이는 그동안 한전이 약속한 사항을 정부와 여당이 지키겠다고 보증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당정은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법 입법이 6월 최우선 과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입법이 이뤄지면 지금까지 한전의 보상안을 불신하던 주민의 반대도 누그러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변수는 정부 내에서 생겼다.

국회 산업위 김제남(진보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법 제정안에 대해 기재부가 "사업시행자인 한전의 자체 재원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액화천연가스(LNG) 기지, 석유비축시설 등 에너지시설 주변지역 지원은 사업자의 자체 재원으로 충당하는데 한전의 송·변전 선로 주변만 정부 재원으로 특혜를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자 정부가 부처 간 협의와 예산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당정협의 후 서둘러 지원법 우선 입법안을 발표만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 민감한 UAE 원전 착공식

이런 가운데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조환익 한전 사장은 28일 오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바라카에서 열리는 한국형 원전 2호기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로 날아갔다.

원자로 부속건물 등 본격 공사가 시작되는 중대 행사라 한전컨소시엄을 대표하는 조 사장 등의 참석이 불가피했지만, 자칫 UAE 원전 착공식이 밀양 주민을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면도 없지 않다.

지난주 변준연 한전 부사장은 UAE 원전 건설의 위약금을 물지 않기 위해 밀양 송전탑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취지로 돌출 발언을 했고, 결국 발언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조 사장은 이런 점을 의식한 듯 현지에서 행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귀국해 29일 국회 소위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