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들 한강으로 넘나들던 고개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발길 줄이어
사우나 온듯한 오르막 끝 '어비계곡'
땀방울에 흠뻑 젖은 여행객 붙잡아

활엽수 능선길 지나 닿은 정상
물안개 핀 남한강 몽환의 절경
펑퍼진 산마루 바위·노송 기묘
계곡 따라 형성된 沼 풍미 더해

#한여름 피서지로 각광 받는 경기명산


어비산은 양평군 중원산의 중원계곡으로 또는 용문산의 용문계곡으로 올라서서 한강기맥을 따라 유명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어비산은 어비계곡과 유명산계곡(입구지 계곡)을 두고 있어서 한여름의 더위를 이열치열로 다스리려는 종주 산꾼들에게 부르튼 발의 피로를 덜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유명산과 어비산은 유명산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한강기맥과 별도로 유명산 정상에서 유명산계곡 방면 동릉과 어비산 정상에서 서쪽 유명산계곡 방면 남서릉은 북쪽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와 남쪽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와 용천리 경계를 이루고 있다.

어비산은 예로부터 홍수 때 물고기가 산을 뛰어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산에 얽힌 전설 두 가지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산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어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일대가 잠기게 되었는데, 그때 계곡 속에 갇혀 있던 물고기들이 본능적으로 유명산보다 조금 낮은 어비산을 넘어 본류인 한강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어비산(魚飛山)이라 불렀다 한다.

또 하나는 옛날 신선이 한강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아 설악면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망태 속에 담겨 있던 고기가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유명산 뒤쪽 산에 날아가 떨어졌다고 하여, 어비산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또한 유명산과 어비산의 등산 기점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선어치고개는 신선이 앉아 휴식을 취할 때 고기가 갑자기 선선해졌다고 하여 싱싱할 선(鮮), 고기 어(魚), 고개 치(峙)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른 여름부터 인파로 가득찬 어비계곡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탓에 번잡하지 않은 산행일 것이란 예상은 어비계곡에 도착하는 순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가득한 계곡엔 일찌감치 찾아온 피서객들이 들어차 앉았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등산객들이 앞다투어 어비산을 오르고 있었다.

마을회관에 주차를 해두고 천천히 임도를 따라가며 계곡을 구경하며 오르겠다던 다짐은 오간 데 없이 어느새 인파에 휩쓸려 달리듯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이미 능선에 이른 후였다.

숲에서 풍겨오는 잣나무 솔가지의 향도 젖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청량함도 잊은 채 오로지 경쟁하듯 오른 것에 대한 후회만 하며 그루터기에 앉았다.

어비계곡을 따라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하다 어비산 정상으로 향하던 것을 멈추고 내려서기로 한다. 어비계곡을 끝까지 보고 싶어서였다.

차량통행을 금하고 있는 찻길을 따라 40여분을 걸으며 계곡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이라 힘들 것도 없지만 후텁지근한 습도가 습식사우나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이 연방 땀을 배출하게 한다.

옥빛의 물색으로 금방이라도 땀에 젖은 몸을 기꺼이 받아주겠노라 불러 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계곡을 옆에 두고 가야 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워 연거푸 푸른 소(沼)를 바라다본다.

폭산이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에 가리웠다. 용문산의 봉우리들도 구름에 숨은 채 도통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에 쉼 없는 발걸음만 재촉한다.

이윽고 도착한 고갯마루에서 약한 바람이나마 땀에 젖은 몸을 훑으며 더위를 식혀주기에 양평 땅을 바라보며 앉았다. 참으로 산이 많은 지역이다.

동쪽으로 양자산, 앵자봉, 폭산, 용문산, 백운봉이 지척이고 서쪽으론 유명산, 소구니산, 중미산, 삼태봉이 또 하나의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유명산

하늘도 땅도 푸른 물줄기의 남한강도 온통 잿빛이다. 비가 그치면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몽환적인 그림을 만들어 낸다.

활엽수가 가득한 능선길 아래로 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비계곡 초입에서 어비산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만났던 숲이다.

고갯마루에서 어비산 정상까지 40여분이 걸려 도착을 했다. 사방이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볼거리는 전무한 형편이라 오래 있을 이유가 없기에 유명산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네모진 돌무더기 터에 도착하자 '제2봉화터'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조망도 한결 나아져서 펑퍼짐한 유명산의 모습이 손 끝에 닿을 듯 다가온다.

펑퍼짐한 육산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어비산 능선에는 간간이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노송의 어우러짐이 눈요기로 충분하고 계곡에서 냉기를 품은 바람이 올라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갈림길에서 유명산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어비계곡과는 다른 양상이다. 협곡을 이루면서 세찬 물줄기가 떨어지며 만들어낸 마당소, 용소, 박쥐소는 더욱 멋들어진 계곡의 풍미를 더하기에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산행은 패러글라이더들이 수놓는 형형색색의 하늘과 임도를 오르내리는 산악자전거들의 행렬을 지나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찾아든 피서객들이 가득한 곳으로 내려서는 것으로 마쳤다.

자연이 주는 무궁한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인간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케 하는 순간이다.
그저 잘 가꾸고 보존하여 후세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기를 기대 하는 것만이 최선이 방법이 아닐까 싶다.


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