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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의무자 학대 판단기준 담은 '스크리닝' 마련돼야
'울산·칠곡 계모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에서 연일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대책은 아동의 신체를 가해하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아 신체적 가해보다 더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방임은 정작 빠져있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장애나 또 다른 학대, 범죄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임은 앞으로도 아동학대의 사각지대로 남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 참조
■ 정부·정치권도 '방임은 외면'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아동학대를 더 이상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사회 범죄행위라는 인식을 갖고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하는 등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신고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아동학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방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고, 방임의 정의마저도 아직 명료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동복지법'은 방임을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아동방임의 정의에 '영양공급', '안전한 주거환경' 등 구체적 문구를 넣은 것에 비해 추상적이다.
오는 9월 시행에 들어갈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기존 '아동복지법'이 정하는 방임의 정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로부터 방임에 대한 내용을 강화하라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왔다. 그런데 왜 (방임에 관한) 내용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쓰레기 지옥 4남매 사건'을 두고도 정부 중앙부처와 수사당국이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정영숙 사무관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입건하고, 기소해 법원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계양경찰서는 방임의 개념이 모호하고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경찰은 아동복지법을 제쳐놓고 4남매 부모의 행위가 형법상 '유기'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계양서 관계자는 "방임과 관련된 판례가 없어 형법상 유기쪽 판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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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에서 내놓은 아동학대 대책의 골자는 학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과 신고의무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임의 개념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방임과 관련해서는 처벌이나 신고의무 등이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수사당국 조차도 아동방임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고의무자인 의사, 교사, 사회복지사 등이 기준이나 지침도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신고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가천대 길병원 서향순 사회사업실장은 "아이를 데리고 외래진료를 온 부모에게 정밀검사나 입원을 하라고 했는데 이를 거부하면 방임으로 봐야할 것인지가 애매하다"며 "멍이나 외상 흔적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아동학대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방임의 경우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의료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적어도 신고의무자들이 아동학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방임 예후나 방임 판정 기준 등이 담긴 일종의 '방임 스크리닝(screening) 척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와 대책이 눈에 보이는 학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임은 상대적으로 제도권에서 소외돼 있다"며 "이러한 부분들도 정책이나 법률에 다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승재·홍현기·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