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 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정치는 국민의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다.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고, 상당히 격앙된 모습도 보였다.

당장 정치권이 큰 혼란에 빠졌다. 당·청 관계는 물론 비박·친박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본회의에 올리지 않으면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부권행사가 여권을 넘어 정치권 전체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가 끝나지 않았는데 정국이 또 혼미 속에 빠져들까 걱정이 될 정도다.

우리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정국 냉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임기를 절반 앞둔 박 대통령의 입장에선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정을 이끌어 가는데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 이어 메르스 사태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 상정된 일자리·경제살리기 법안이 3년째 국회에 발이 묶인 현실에 대통령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날 “내년 총선까지도 통과시켜주지 않고 가짜 민생법안이라는 껍질을 씌워 끌고 갈 것인지 묻고 싶다”며 “진정 정부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면 한번 경제법안을 살려본 후에 그런 비판을 받고 싶다”는 발언에 대통령의 마음이 읽힌다. 하지만 폭탄 발언으로 인한 정국 혼란이 한국사회 전체를 흔들어 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메르스 사태에 경제난, 여기에 산적한 외교·안보 현안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설상가상 정국 냉각으로 모든 사회시스템이 표류할 가능성도 커졌다. 도대체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개탄스럽다. 박 대통령도 여·야도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