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 담을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발언의 수위가 향후 한일관계의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본 NHK는 14일의 담화 원안에 ‘침략’과 ‘사죄’, ‘통절한 반성’과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가 명기됐다고 보도했으나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사죄가 아니라 역대 정권의 대응을 거론하는 대목에 이러한 표현이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아사히 신문은 “아베 담화 초안에 ‘사죄’문구는 물론 그와 유사한 문구도 없다”고 전한 바 있다.

이러한 보도를 종합해 볼 때 아베 총리의 일본 침략 전쟁에 대한 사죄의 의미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침략이 있었고 이런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원론적 의미의 발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전형적인 물타기 발언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지 않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인식은 일본의 우경화와 맞닿아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도 일치한다. 일본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군사대국화는 미국의 용인하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사과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베 내각의 이중적인 행위는 미국의 암묵적 지원하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계승하지 않고 침략 전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도 일본을 상대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없다. 한일 관계의 미래가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명확한 사과와 입장 표명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일 관계의 복원을 위해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나 징용 등의 문제에서도 사죄와 함께 배상, 보상 등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가해자의 진솔한 역사 인식과 사과가 없다면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불가능하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우경화와 왜곡되고 천박한 과거사 인식이 일본에게 재앙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나카소네 전 총리의 “역사를 바로 보지 않는 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신뢰와 존경도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을 아베 총리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