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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희 남양주서 진접파출소장
진접파출소 입구 한 귀퉁이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비석이 있다. ‘지서주임 경위 김공세장 기공비(支署主任 警衛 金公勢場 紀功碑)’.

지난 1958년 6월 8일 오전 11시, 옛 양주군 진접면 양주경찰서 진접지서(현 남양주시 진접읍 남양주경찰서 진접파출소)에서는 면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김세장 지서주임(지서장) 기공비 제막식이 열렸다. 김세장 경위의 퇴임을 아쉬워한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양조장 사장 등 지역 유지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당시로는 최초로 살아있는 경찰관에게 공로비를 헌사한 것이다.

김 경위는 지서주임 재직 4년간 모범경찰관으로 민폐 근절은 물론, 부랑아 선도 및 극빈자 구호에 솔선수범하는 경찰관으로 면민들의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지서주임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안팎이었음에도 김 경위는 면민들의 간곡한 청원과 만류로 임기를 훌쩍 넘겨 마을을 지켰다.

아직도 이곳에는 김세장 주임을 기억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 진접읍 장현리에서 5대째 거주하는 최대호(77)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라 동네에 돌아다니면 총탄과 수류탄을 심심찮게 습득할 수 있었지. 그것들을 이용해서 새를 잡으려고 산탄총을 만들어 쐈는데 총알이 글쎄 진접지서로 날아갔지 뭐야. 꼼짝없이 처벌받겠구나 싶었는데 잠시 후에 김세장씨가 저 멀리서 인자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거야. 그날 지서에서 쓸 장작 패는 걸로 벌을 대신했지.”

경찰관을 ‘순사’라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웠던 시절, 경위 지서주임이라 하면 지역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을 짐작할 수 있는 직위였다. 하지만 김 경위는 한국전쟁 직후 사회적인 혼란과 궁핍이 극심한 때에 청렴하면서 주민을 위해 애썼던 인물이었음이 희미한 기록과 증언에서 입증됐다.

내일은 경찰 창설 70주년으로 올해는 달라진 경찰 위상에 맞춰 앞으로의 시대 환경에 새롭게 적응할 로드맵 정립과 성숙함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치안유지와 법 집행은 경찰 업무의 핵심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주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소통하는 민생치안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처음 찾아간 상점, 혹은 가정집의 반응은 멋쩍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몇 번을 두드리자 관계는 편안해졌고, 작은 미소로 주민과 나눈 인사가 강력범 검거에 버금가는 값진 성과일 수 있다는 신념이 쌓였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 경찰에 대한 신뢰의 열매가 한 시골마을 지서장이 심은 씨앗이 튼튼한 뿌리가 됐기에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그동안 군(軍)에서는 수많은 전쟁영웅을 발굴해 애국의 전설로 재조명해왔으나 국가 안보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수십만 경찰 선배를 대상으로는 상대적으로 그런 작업이 미진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진접지서주임 김세장 경위는 이미 60여년 전에 주민과 함께하는 치안서비스를 펼친 선구자였다. 현 세대 문안순찰과 SNS소통의 모태인 그의 애민 혼이 후배들의 영원한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

/한석희 남양주서 진접파출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