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최고(最古)의 삼국지 판본은 에도시대인 겐로쿠 5년(1692)에 일본어 가나로 번역된 '통속삼국지'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3년 앞서 고난분잔이 '삼국지'를 번역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만화의 나라답게 고난분잔의 '삼국지' 이후인 덴포 7년(1836) 400여점의 그림과 삽화가 들어간 '회본통속삼국지'가 출판되었으며, 우키요조시의 '풍류삼국지'(1708)와 키뵤우시 곧 일종의 그림책소설이라 할 수 있는 '통속삼국지' 등도 큰 인기를 끌었다. 또 중국의 경극처럼 '삼국지' 일부를 가부키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근대에는 기쿠치 간(1888~1948)·나오키 샨주고(1891~1943)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1892~1962)가 쓴 '삼국지'(1939)가 특히 유명하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중일전쟁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일본 해군의 전사(戰史)를 집필하기도 한 체제 내적 인물이었다. 그는 '미야모토 무사시'(1935) 등 사무라이를 다룬 소설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의 '삼국지'는 전시 체제 하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국운이 달린 전쟁에서 전쟁 자체는 물론 전쟁을 위한 명분과 이념을 만들어내는 것과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 모두 중요하다.
전쟁과 국가의 흥망을 다룬 '삼국지'를 통해서 요시카와는 동아시아를 무력으로 통일하여 대동아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주의를 역사적으로 늘 반복되어온 불가피한 일로 정당화한 것, 요컨대 추악한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요시카와 '삼국지'는 '추카이쇼교신포'에 1939년 8월 26일부터 1943년 9월 5일까지 4년 동안 연재됐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일본어 신문 '경성일보'에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연재된 바 있다. 그의 '삼국지'는 '모종강 삼국지'와 달리 유비가 황하의 포구에서 차를 구입하는 장면에서 시작되며 로맨스와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를 가미하는 등 근대소설의 면모를 보여준다.
요시카와의 '삼국지'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한국전쟁기인 1952년 서인국에 의해서였다.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에 의해 '전략삼국지(1974)'란 이름으로 만화화되기도 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SF만화 '바벨 2세'(1971)로 명성을 얻은 작가이며, 패전을 겪은 일본인들의 힐링 만화였던 '철완 아톰'(1952)의 작가 데스카 오사무(手塚治蟲)의 제자였다. 이후, 일본에서 '삼국지가 전략시뮬레이션게임으로 개발되었다. 일본은 '삼국지'의 나라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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