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스코 근교 피삭 가는 길에 양치기 소년들과 유쾌한 잉카식 공기놀이 '추억'
이색적 난장 풍경에 흥분해 엎어진 나를 보고 킬킬대는 아이들… 장마당은 금세 웃음바다로
마추픽추 구불구불 산길 관광버스가 돌때마다 각 나라말로 '굿바이!' 외치는 소리, 머지않아 사라지겠지…

그럼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나중에 물어보니 빈병 하나면 사탕 5개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굿바이 소년에게 준 빈 콜라병
마추픽추의 거점 마을 아구아깔리엔떼에 숙박을 정하고 3일 동안 마추픽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4일은 잉카트레일을 추위와 고소를 적응하며 발이 아프도록 걸었다. 잠은 게스트하우스와 텐트를 번갈아 가며 해결했지만 식사는 요리사가 동행해 주었다.

하루는 저 멀리 야마가 풀을 뜯고 있는 민가가 없는 외딴 길을 걷고 있는데 고개 마루에서 페루(잉카)의 전통의상 숄과 폰쵸(판초)를 입고 전통언어인 케추아어를 쓰는 소년 몇이 우리 일행을 따라오며 환영인사로 말을 걸어왔다.
그때 각기 다른 나라 여행자 5명이 팀을 이루어 걷고 있었는데 소년은 나를 보더니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으면 그들이 그 전설의 굿바이 소년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추픽추로 오르내리는 험로에서 그들을 보지 못해 섭섭했는데 잉카트레일에서 그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행운이다.

소년들은 여행자들이 음료수를 마시고 난 후 버리는 빈병을 얻기 위해 그곳을 지킨단다. 물론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어서 나는 이미 몇 소년 중 누구에게 빈 병을 줄 것인지를 마음으로 정한 후였다.
나는 콜라를 반 쯤 마시고 가장 어린 꼬마에게 병을 건넸다. 녀석은 '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새처럼 날아 순식간에 저만치 사라져갔다.
다음 날은 다른 아이들이 산마루에 나타났다. 우리는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취급하는 빈병인데 그들은 오로지 그 병 하나를 얻기 위해 추운 산길을 슬리퍼 차림으로 서너 시간을 걸어 그곳까지 온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나중에 물어보니 빈병 하나면 사탕 5개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빈병을 주기 위해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콜라나 환타를 자주 사게 되었고 반드시 반은 남겨 아이들에게 돌려주곤 했다. 그건 오로지 빈 병 하나를 얻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들의 미소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피삭 장날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아구아깔리엔떼를 출발, 산페드로를 거쳐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고도가 높아 이틀은 빛이 잘 드는 게스트하우스에 시체처럼 누워 창밖으로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도 마른 빵을 뜯거나 코카차를 마시며 꼼짝 않고 침대를 지켜야만 했다.
사흘 후 기운을 차려 나는 쿠스코 근교 고대 유적지가 있는 피삭가는 길에 양치기 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께냐(안데스 피리)소리도 듣고 잉카식 공기놀이를 하며 한나절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우루밤바 계곡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콘도르가 솟구쳐 오르는 산 중턱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마침 그날은 피삭의 장날이었다.

장마당은 마법처럼 흥미로웠다. 모자에 멋진 생화로 장식을 하고 붉은 숄을 걸친 잉카의 여인과 아이들, 그들이 감자와 울긋불긋한 채소를 이고지고 와 난장에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풍경은 충분히 이색적이었다. 나는 마음이 살짝 흥분되어 장마당을 돌아보다가 발아래 보퉁이에 걸려 감자바구니 위로 보기 좋게 엎어지고 말았다.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아이들이 킬킬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장마당은 금세 나로 인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와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난 그 작고 따듯한 손을 잊지 못한다.

*마추픽추
오랫동안 세계 7대 불가사의 자리를 지켜왔고,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으며 잉카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써 '공중도시' 혹은 '읽어버린 도시'라 칭하는 마추픽추는 페루 안데스 산맥에 위치해 있으며 형성 시기는 1460년~1470년대로 추정된다.
'늙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산정에 도시를 건설하고 복수할 기회를 기다렸지만 16세기 어느 날 그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깊은 산 속으로 사라졌다.
항간에는 괴질로 전멸했다는 설도 있으나 왜 더 깊은 산속으로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굿바이 소년
잉카인의 후손으로 마추픽추를 돌아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내려오면 돌계단으로 된 지름길(좁은 돌계단)을 달려 내려와 차가 돌 때마다 각 나라말로 '굿바이!'를 외쳐주고 팁을 받는 소년들이지만.
지금은 국가에서 이미지 쇄신을 위해 방학 때 한시적으로만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하여 예전처럼 늘 만날 수는 없다. 마추픽추가 그러하듯 굿바이 소년도 머지않아 전설이 될 거라니 왠지 아쉬움이 크다.

*잉카트레일
천 년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잉카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36㎞를 3박4일 동안 걷는 코스인데,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전문 가이드와 포터가 동행하여 길안내, 숙식, 짐 등을 해결해준다.
그러나 말 그대로 트레킹인 만큼 4천m가 넘는 험한 고지대를 본인의 두 발로 직접 걸어야 하므로 고소증과 추위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